중앙집권식 농정, 한계에 직면…농정분권 필요성 대두

[농수축산신문=김동호, 이문예 기자]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가 지속되는 뉴노멀 속에서 지방은 소멸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방분권의 중요성이 강조, 농업·농촌 역시 지방분권이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농정의 여건에 대해 살펴보고 자치분권시대에 걸맞은 농정비전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 한계 직면한 중앙집권식 농정

그간 이뤄져온 중앙집권식 농정이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앙집권적인 농정체계로 중앙정부의 역할이 강조돼 왔다. 특히 주곡인 쌀 산업에 있어서 중앙정부 주도의 산업인프라 구축은 일정부분 성과를 거뒀다. 또한 시장개방에 대응해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농촌의 활성화를 위해 1980년대 말부터 구조개선사업과 농특세사업,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른 피해보전대책, 수급안정대책 등 많은 재정투자를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가 농업·농촌과 관련된 모든 정책을 기획하고 필요한 재정을 확보, 개별 정책사업별로 세세한 사업지침을 설계해 지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다양해졌고 중앙정부 주도의 설계주의 농정은 이같은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고보조사업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보다는 전국적으로 획일적인 지침에 따라 사업이 추진, 지역의 차별성을 정책에 반영하지 못해 농정성과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유기질 비료 지원사업을 보면 국가에서 지정한 비료 재배정 시기와 지역 주요 작물의 작기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또한 중앙집권식의 농정에서는 중앙정부가 소규모 사업까지 지나치게 개입하다 보니 농정의 비효율을 가져오는 한 원인이 됐다.

황수철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은 “정부주도의 개발이 이뤄졌던 시기에는 중앙정부가 일관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중요했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중앙집권식 농정이 이같은 요구에 모두 대응하기는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했다.

# 거세지는 분권 요구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획기적인 자치분권과 강력한 재정분권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 일환으로 2018년 9월에는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가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발표한데 이어 지난해 3월에는 올해 자치분권시행계획도 발표했다. 자치분권 종합계획은 ‘우리 삶을 바꾸는 자치분권’을 비전으로 △주민과 함께하는 정부 △다양성이 꽃피는 지역 △새로움이 넘치는 사회라는 목표아래 6대 추진전략과 33개 세부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자치분권시행계획에 따르면 중앙권한의 획기적인 지방이양을 위해 △중앙-자치단체간 사무 재배분 △중앙권한의 기능 중심 포괄 이양 △자치분권법령 사전협의제 도입 △국세·지방세 구조개선 △국고보조사업 개편 △지방교부세 형평기능 강화 등을 추진한다.

더불어 지방분권을 위한 법안개정 요구도 거세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지방분권 관련 법률안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지방이양일괄법 △지방세법 △지방세 기본법 △지자체 기금관리 기본법 △지방재정법 △부가가치세법 등이 있다. 지자체장들이 국회에서 지방분권 관련 법률안을 조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전문가, 시민단체 등도 자치분권의 조속한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 ‘분산’ 아닌 ‘이양’에 초점

농정분권은 지자체로 업무를 넘기는 ‘분산’이 아닌 ‘이양’에 초점을 두고 있다.

황의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의 ‘지방분권을 위한 농정추진 개편방안(1/3차년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사무의 분산이란 중앙정부차원에서 행정적인 책임을 재분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이양은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방정부에 넘겨져 지방정부가 정치·경제·행정적인 측면에서 독립적인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감안하면 농정의 분권은 지방행정의 결정과 집행을 위한 정치적·행정적·재정적 권한과 자원을 지방정부가 나눠가지는 것을 뜻한다.

이같은 농정의 분권은 지역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확대하면서 그간 제기돼온 중앙집권식 농정에 대한 비판사항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농업·농촌은 지역적으로 특수성과 차별성이 강하기 때문에 지방분권이 강화되면서 지역의 자율성이 확대될 경우 농업·농촌의 활력을 제고하는 효과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황 부원장은 보고서에서 “농정분권으로 농업분야에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자율적 권한과 책임을 가진 사업이 많이 추진되고 그에 따라 농업·농촌의 발전을 촉진하는 전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즉,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농정추진전략으로 농정의 분권을 선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준비 부족한 지자체

새로운 농정추진전략으로 농정분권이 강조되고 있지만 지자체의 농정여건은 녹록지 않다.

지방농정의 한계는 특히 예산과 인력에서 드러난다. 제한된 예산과 인력은 정책 운용 과정에서 지역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으며 전문성 부족 등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도 발생시킨다.

이는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농정사업의 구조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지난해 기준 시·도 단위 농정예산 약 4조5897억원 중 도비 자체 재원은 1조792억원에 불과했다. 평균 76.6%가 중앙정부로부터 확보한 재원이었으며 도가 자체적으로 확보한 재원은 23.4%에 불과했다.

도별로 중앙정부 의존도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제주의 경우 전체 농정예산 928억원 중 도 자체 확보 예산이 564억원으로 60.8%를 차지하며 전국에서 농업예산 부문의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제주도가 국고보조사업, 균특사업, 기금 등의 명목으로 중앙정부로부터 받는 예산이 363억원으로 전체의 49.2%,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전남의 경우 전국에서 중앙정부 의존도가 가장 높았다. 농정예산 9165억원 중 중앙정부 예산이 7850억원으로 85.6%에 달해 거의 대부분을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방 농정사업의 중앙정부 의존도가 이렇게 높다보니 지자체 특수성을 살린 농정사업의 실행은 좀처럼 쉽지 않다. 지자체 예산 비중이 높다고 해도 상당부분이 국고보조사업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입되고 있어 재정 운용의 경직성 문제가 불거진다. 중앙정부의 국고보조사업을 중심으로 그때그때 지방 농정을 꾸리는 탓에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순환보직에 ‘업무 연속성 단절’ 되풀이

기초단체에서 농업 분야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담당 공무원들의 순환보직이 이뤄진다. 농정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비전문가가 농정을 담당하면서 사업 효율성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낳는다. 이는 지방농정의 추진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도 단위에서는 그나마 낫지만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인력풀의 한계로 농정 업무가 연속적,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농정 업무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최근에는 공무원들의 농정 분야 기피 현상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또한 농정 업무를 맡게 되더라도 최대한 소극적으로 대처하며 몸을 사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현상들은 국고보조사업 중심의 농정 운용과도 맞물려 있다. 이미 세세한 부분까지 틀이 정해진 다양한 국고보조사업들을 지역에서 소화하려다 보니 업무 담당자들이 정책의 취지와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농정 전담 인력의 확보는 사업의 성과와 직결된다. 실제로 현장에서 고급 전문 인력을 키울 수 있는 여건 조성의 필요성이 수없이 강조되는 이유다.

황의식 부원장은 “충남의 사례를 볼 경우 광역자치단체에서는 자체사업 중 지자체장의 공약사업에 대해서는 전담인력을 배치해 성과를 창출할 수 있지만 다른 농정사업의 관리에는 소홀하게 되는 한계가 있다”며 “또한 기초자치단체에서는 농정전담인력이 부족하고 순환보직으로 농정추진의 전문성이 약화, 농정성과가 감소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농정 거버넌스 구축 미흡

중앙농정은 지역의 특수성과 지역 농업인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의 협력적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의 연장선에서 농어업회의소의 법제화 등 역할 강화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농어업회의소는 농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농촌을 진흥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된 민간 농정기구다. 좀 더 가까이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농정에 담아내기 위한, 이른바 상향식 농정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기구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농어업회의소의 모델로는 그 역할과 기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선 이미 1998년에 농어업회의소의 법제화와 전국적 조직 설립 추진과 관련한 논의가 오갔다. 그러나 국민 공감대의 부족과 농업계의 이해관계 조정 실패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후 2010년 다시 야심차게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시범사업에 머물고 있다. 이마저도 근거 법률이 마련되지 않아 반쪽짜리 사업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법적 근거가 없어 정부와 지자체 사업을 위탁 운영할 수도 없을 뿐더러 지자체 지원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현재 전국 지자체에 설치·운영되고 있고 있는 농어업회의소의 사업은 교육과 컨설팅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농정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이 협력하고 조율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농정 거버넌스의 구축이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지방농정 자율성 확보 관건

농정분권의 가장 기본은 중앙과 지방의 역할을 구분하고 업무를 지방에 이양하는 동시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업무 특성에 맞게 방법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할 업무는 지방에 이양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이 함께 운용하는 것이 유리한 업무는 협의 하에 진행하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법 등이다.

황의식 부원장은 농정연구센터 연례심포지엄에서 “현재의 국고보조사업 중 정부가 담당해야 할 사업, 지방으로 이양할 사업, 국고보조사업으로 추진하되 사업 방식을 개편해야 할 사업 등으로 유형화해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부원장은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업무 이양에 따라 지방의 업무 부담이 늘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담당해야 할 사업에 대해서는 지역에 사업 추진을 위탁하지 않고 직접 추진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방농정국을 도입해 직불제 등 주요 농정 현안에 대해선 중앙정부가 직접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미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서는 공익형 농정 강화를 위해 지방농정국의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 지방이 지방농정의 주체돼야

지역이 지방농정의 주체로서 성장해 나가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지자체가 중앙정부 국고보조사업의 세부적 방향 등을 제시하고 지역 여건과 특성에 맞는 사업을 제시하려면 중앙정부와 실질적으로 협력하고 협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농정 업무의 연속성,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문 인력의 육성 역시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자체 농정조직과 지역 농정거버넌스의 내부 역량을 강화, 현재 이뤄지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 농정을 상향식으로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향식 농정,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 등의 역할주체로 농어업회의소가 거론된다. 농어업회의소의 법제화를 통해 농업인 스스로 필요한 사업을 발굴하고 정책화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어업회의소가 법제화되면 지자체의 재정적 지원도 가능해진다.

# 예산에 꼬리표 달아야

얼마나 많은 예산이 농정사업에 할당되고, 얼마나 적절하게 쓰이는지에 따라 농정분권의 성패가 갈린다.

정부는 2018년 10월 발표한 재정분권안에 중앙정부의 기능 이양과 함께 지방 정부의 예산 확보 방안을 담았다. 지방소비세율을 15%(2019년)에서 올해 21%까지 높이되 지방교부세 감소분, 균특회계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방으로 이양된 농정사업에 대해 따로 재정을 분배하지 않고 재정분권을 통해 확대된 재정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발표된 재정분권안으로는 수도권의 재정이 늘어나고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의 재정은 오히려 감소할 우려가 크다.

또한 지자체의 판단으로 예산을 배분하기 때문에 농업분야의 예산 감소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촌에서도 농업의 산업적인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다 농업인의 인구비율 역시 높다고 보기 어렵다. 선출된 지자체장의 입장에서는 비중이 크지 않은 농업·농촌에 예산을 많이 투입하기는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예를 들면 도로와 농로를 들 수 있다. 도로는 불특정 다수의 모든 주민이 이용하는 사회간접자본이지만 농로는 농업인이 주로 이용하는 농업인프라다.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대다수의 주민이 이용하는 도로를 조성하는 것이 농업인이 이용하는 농로를 조성하는 것보다 우선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농정의 분권이 오히려 농정사업의 위축을 가져오게 될 수 있다.

장민기 농정연구센터 소장은 “재정분권으로 지자체에 배정된 추가 재원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규정하지 않은 채 이른바 꼬리표 없는 예산을 지방에 넘기면 당연히 산업적 가치가 적은 농업 분야의 예산이 감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농촌분야에 예산을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지자체에 포괄보조를 하면 지자체가 각자의 계획에 따라 예산을 수립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 농정분권, 단계적 추진이 필요

농정분권이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농정분권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오랜기간 중앙집권식 농정이 이어져 오면서 지자체에서는 농정을 기획해볼 기회가 충분치 않았다. 지자체의 농정기획력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지는 급진적인 농정분권은 오히려 농업·농촌에 불리한 구조가 형성될 수 있는 만큼 단계적인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추후 확대될 농정분권에 대응, 농정거버넌스 조직을 체계화하고 농업인들이 직접 농정예산을 꾸리는데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최소한 농업분야의 주민참여예산에 한해서라도 일부를 할애해 농업인들이 직접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집행, 이를 모니터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수철 이사장은 “중앙주도형 농정에서 지방의 역할은 사업의 대상자 선정과 예산 분배 정도에 그쳤다”며 “현장의 필요와 요구를 파악하고 주도적으로 사업을 기획·운용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사업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장민기 소장은 “농정분권이라고 하면 일시에 농정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국가는 직불금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이 경우 지방사무이양의 사례처럼 농업계에 불리한 형태가 될 공산이 크다”며 “지방농정조직과 거버넌스 조직을 정비하고 이들이 분권화된 농정구조에 적응하면서 점진적으로 농정의 주도권을 확보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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