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는 아니지만 업계 불만 고조
농장·산란일자별 이력번호 부여… 현장업무 '과다'
농장가금이력제 시범사업서
발생한 문제점도 개선 안돼

[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1>산란계 업계 현장 대혼란

닭·오리·계란 등 가금류에 대한 이력제(이하 가금이력제)가 지난 1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계획이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산업의 특성 등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진행, 이로 인한 업계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현장에서 제기하고 있는 가금이력제의 문제점과 보완점 등을 살펴본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이력 추적 가능하도록 

가금이력제는 거래 단계별 정보를 기록·관리해 문제가 발생할 시 이동경로를 역추적하고 신속한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동시에 원산지 허위표시, 둔갑판매 등 유통 과정에서의 문제 발생을 방지하고 소비자에게 닭·오리·계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를 위해 앞으로 도축장이나 식육포장처리업장, 식용란선별포장업장 등에서는 이력번호를 발급·표시해야 한다. 

닭과 오리의 경우 도축장에선 출하 농장의 농장식별번호를 확인 후 이력번호를 발급하고 식육포장처리업장에선 포장처리에 따른 묶음번호 실적을 신고하고 이력표시를 해야 한다. 계란의 경우엔 식용란선별포장업장에서 출하농장의 식별번호를 확인해 농장별, 산란일자별 이력번호를 발급하게 된다. 

 

“대형 업체도 두손 두발 들었는데” 

하지만 가금업계, 특히 산란계 업계에서는 이번 가금이력제의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란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가금이력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다만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는 모든 계란 유통업자가 범법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어 당장 시행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계란에는 농장별로, 산란일자별로 각기 다른 이력번호가 부여된다. 농장마다 이력번호가 다름은 물론이고, 같은 농장에서 생산됐다 하더라도 산란일자별로 이력번호가 달리 생성된다. 이력제의 목적이 유통 경로를 명확히 하는 데 있기 때문에 한번 이력번호가 부여되면 소매점 등의 판매점에 이를 때까지 추적이 돼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번거로움을 넘어서 현장의 업무 과다를 불러와 원활한 업무 진행을 방해할 소지가 크다는 데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 계란 유통상인이 농장 5곳과 거래한다고 할 때 농장별로 산란일자가 2개씩만 나와도 10개의 이력번호가 생기고, 여기에 거래처별로도 다른 이력번호가 생기기 때문에 매번 수십개의 이력번호를 별도로 관리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통상인 한 명이 30~50개의 거래처를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며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대형 계란 유통업체의 이력제 담당 관리자들도 ‘더 이상 못하겠다’며 두손 두발 다 들었는데 어느 누가 이런 제도를 이행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형식에 그친 시범사업

▲ 지난달 이마트 성수점에서 열린 닭·오리·계란 이력제 시연회의 모습.

이러한 문제점들을 사전에 발견·보완해 나가기 위해 시행하는 시범사업이 형식상 사업에 그쳤다는 지적도 있다.

김낙철 한국계란유통협회장은 2019년 6월부터 제2차 가금이력제 시범사업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이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회장은 “일단 좋은 의도에서 시범사업에 참여했다가 업무가 과중해 중간에 사업을 중단하려 했더니 사업 담당자가 ‘하는 데까지만 해달라’, ‘하는 흉내라도 내달라’는 요청을 하더라”면서 “실제로 이대로 사업이 진행됐을 때 업체들이 하는 흉내만 내다가는 모두 범법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인데, 문제점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일단 시행해보자는 입장이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력제 시행 주최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유통 단계에 대한 단속이 6개월 유예됐고, 그 동안 문제점들을 발견해 적극 보완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농식품부 한 관계자는 “이력제와 관련해 특히 계란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제도 시행에 따른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겠지만, 이전의 살충제 계란 등과 같은 문제 발생에 대한 개선 대책으로 시행하는 것이고 본격 시행 전에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선 충분한 개선 의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