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R 사료 역사의 산증인...생산량 증대 '일등공신'

[농수축산신문=안희경 기자] 

국내산 조사료 이용률 제고 등 
단미사료·TMR 업계 발전과 
후배들을 위한 일 하고 싶어 

 

“1970년대에는 TMR(완전배합사료)에 대한 인식도 없을 때였어요. 농가들 인식을 바꾸고 TMR 사료를 알리는 것도 정말 힘들었죠.”

우리나라 TMR 사료업계의 선두주자 중 한명인 이정근 알파사료 대표는 배합사료업체의 대리점을 하다가 TMR 사료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료회사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TMR 사료의 필요성과 우수성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됐어요. 당시에 우리나라 낙농가들의 일생산유량이 18kg도 안될 때에요. 생산량을 늘리려면 축우에서는 TMR 사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사료대리점과 낙농기자재를 판매하는 사업체에서 TMR 사료쪽으로 눈을 돌리고 농가들에게 TMR 사료를 알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내산조사료와 알곡을 직접 손으로 비벼서 포대에 담아 TMR 사료를 농가들에게 배달했어요. 그러다가 한 지인의 소개로 이태리에서 기계를 들여와 기계로 배합을 시작했죠. 농가들에게 TMR 사료가 뭔지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농가들이 TMR 사료를 도입하면서 생산량이 눈에 띄게 늘어나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20여년 전 지금의 알파사료 공장을 경주에 세우고 TMR 생산을 시작한 그는 우리나라 TMR 업계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뜻을 함께하던 업체들과 단미사료협회로 들어가 별도의 분과를 만들고 지금의 기틀을 마련했다.

“농가들이 TMR 사료를 도입하고 유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생체 중량도 눈에 띄게 늘면서 점차 TMR 사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올라갔습니다. 국내 TMR 역사를 함께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보람이 크죠.”

아들에게 사업 승계작업을 하고 있는 이 대표는 이제 국내산 조사료 이용의 확산과 이를 통한 농촌경제 활성화를 위한 일들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단미사료업계와 TMR 업계의 발전을 위해 후배들을 위한 일들을 하고 싶어요. 조사료단지 등 국내산 조사료의 이용을 높이는 일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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