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원가이하 납품요구…1분기 적자만 3억

[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글 싣는 순서>
(上) ‘큰손 고객’ 대형마트 잡으려다…
(下)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인 ‘악순환’ 반복

▲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쌀 도매가격 약세가 지속되면서 일부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영업손실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대형마트들의 상시 할인행사, 기획전 등 행사용 저가 납품 요구와 맞물려 RPC 운영주체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에 산지 RPC를 중심으로 현장의 문제점들을 짚어본다.

# 대형마트, 미끼상품용 원가 이하 납품 요구

“대형마트가 RPC 최대 고객 중 하나인데 어떻게 그들의 제안을 쉽게 거절할 수 있겠어요. 대형마트도 자기네들 입맛에 맞게 잘 맞춰주는 거래처와 거래를 하길 원하지 않겠어요?”

최근 대형마트와 거래하는 지역의 몇몇 RPC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국내 주요 대형마트들로부터 좀 더 낮은 가격에 쌀을 공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요 대형마트 중 2곳의 창립기념일이 4월 초, 5월 중순에 있는 까닭에 연초만 되면 대대적인 창립 기념 행사를 위한 미끼상품으로 쌀을 공급해 주길 요구받는 것이다.

문제는 요구 가격이 터무니 없이 낮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20kg 쌀 한 포대의 도매가가 최소 4만5000원은 돼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40kg당 평균 6만2000원 내외인 조곡 매입가격에 비춰볼 때 포장·유통·인건비 등을 모두 합산하면 20kg당 4만5000원보다는 높은 가격에 거래돼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 대형마트들이 제시한 가격은 이보다 더 낮았다.

산지 RPC 관계자 A 씨는 “같은 할인율을 적용해도 쌀이 몇 천원짜리 공산품보다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할인폭이 더 크고, 마트 입장에서도 매출 상승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대형마트들이 미끼상품으로 쌀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이유로 한 대형마트에선 행사 2개월 전인 2월부터 지속적으로 쌀을 4만5000원 이하로 납품할 것을 요구해 왔다”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참여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대형 거래처와의 관계 지속을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응할 수밖에 없다”며 “한 대형마트에서 쌀을 미끼상품으로 행사를 펼치면 바로 이어 다른 대형마트들도 경쟁적으로 보다 낮은 가격의 상품을 내놓기 위해 줄줄이 RPC들을 압박하는 분위기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 매달 RPC 적자 불어나

이처럼 RPC들이 매년 이어져 온 대형마트들의 쌀 미끼상품용 매입에 올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쌀 가격이 몇 개월째 약세를 보이는 등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현재 지역 RPC들의 쌀 재고는 감소 추세지만 쌀 소비의 증가로 해석하기보다는 생산량 감소로 해석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판단이다. 오히려 소비 감소 등의 가격 하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 4~5월에도 쌀 가격은 약보합세를 보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박한울 농경연 농업관측본부 연구원은 “지난해 태풍 피해를 입은 피해곡이 정상곡과 섞여 유통되면서 전체 쌀 가격이 하락했다”며 “여기에 코로나19로 외식업체와 식자재업체의 쌀 소비가 감소한 것도 가격 약세를 이끄는 원인”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쌀 가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마트들의 무리한 요구까지 겹치다보니 몇몇 산지 RPC의 경영실적은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다.

산지 RPC 관계자 B 씨는 “올해 1분기 적자가 3억원이니 한 달에 1억원씩 적자가 나고 있는 셈”이라며 “안 그래도 힘든데 우리처럼 대형마트와의 거래 물량이 많은 곳들은 무리한 요구에 응하려니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B 씨는 “그동안 대형마트를 통해 이득을 본 것이 있으니 창립기념일과 같은 큰 행사 때에는 조금 양보해 달라는 식의 암묵적 압박인데, 결국 유통 단계에서 손실이 많이 나면 다음 해 쌀 생산 농가에게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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