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수록 손해…RPC 죽이는 '최저가 경쟁'
경쟁력 있는 업체 선정 후 가격 협의 구조 필요

[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지속가능한 쌀 산업을 영위하기 위해선 대형마트와의 불합리한 거래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마트 납품가 인하가 결국엔 연쇄적으로 전체 쌀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 최저가 경쟁입찰제에 RPC 출혈납품  

대형마트와의 불균형적인 거래 행태는 지나치게 경쟁적인 거래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다수다.

현재 일부 대형마트의 경우 최저가 경쟁입찰제를 통해 쌀을 납품받는다. 여러 RPC(미곡종합처리장)의 입찰가를 비교해 가장 낮은 입찰가를 제시한 RPC부터 차례로 몇 개의 업체에 마트 납품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정된 RPC들은 자신이 제시한 입찰가와는 무관하게, 해당 입찰에서 제시된 가장 낮은 입찰가로 쌀을 공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는다. 입찰 과정에서 어렵사리 출혈경쟁을 뚫고 살아남았어도 일부는 판매할수록 손해를 보는 기이한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산지 RPC 관계자 A씨는 “수확기 수매가에 따라 각 RPC의 쌀 원가가 달리 정해지는데 그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입찰 최저가로 공급하게 하면서 일부는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최대 거래처인 대형마트의 관계를 유지하고 최대한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대부분 그대로 계약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이런 구조 속에서는 쌀 산업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RPC들의 수매가는 천차만별이다. 한 산지 RPC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지역 조곡 수매가는 40kg 기준 5만3000원부터 6만2000원 사이에서 형성됐으며, 전남지역의 경우 6만1500원이 하한선일 정도로 수매가격이 각기 다르다.

산지 RPC 관계자 B씨는 “대형마트를 포함한 대형유통처의 납품가가 현재 20kg 기준 4만3000원부터 4만5000원 이내에서 형성되고 있는데, 평균 원가가 약 4만5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수매가가 낮았던 일부 RPC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원가 또는 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셈”이라며 “재고 소진 등을 위해 RPC가 자체적으로 원가나 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애초에 원가 이하로 시작하는 것은 RPC 죽이기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 RPC·농가·대형마트 ‘상생’ 경영해야

일각에선 이러한 무리한 경쟁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 최저가 경쟁입찰제를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입찰가로 거래처를 선정하고 최저 납품가로 일괄 납품하게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업체를 먼저 선정하고 가격을 협의해 나가는 구조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B씨는 “최저가 경쟁입찰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거래처가 먼저 선정되고 각 RPC가 쌀 원가와 사정에 맞게 가격을 제시, 마트와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있었다”며 “이 또한 이상적인 거래 방식은 아닐 수 있지만 지금보다는 더 공정한 거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도 “정부가 ‘상생’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쌀을 중요한 생명산업으로 인지하고 있는 만큼 대형유통체들도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고 RPC, 나아가서는 농가들과의 상생을 바탕에 두는 경영을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농협의 경우 농가 소득 안정화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높은 가격에 농가에게서 쌀을 수매하려 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농협 RPC도 다음해에는 보다 낮은 가격에 쌀을 수매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농가의 경영이 안정화돼야 산업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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