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최기수 발행인] 

“사료가 없어서 가축이 다 죽게 생겼다. 사료곡물을 수입할 수 있는 긴급대책이 시급하다.” 1997년 11월 하순. 편집회의를 하는데 축산파트에서 이런 내용이 올라왔다. 나라에 외화가 바닥나 사료곡물을 수입할 수 없게 되면서 발생한 사태였다. 이 사태는 12월 23일 미국 농무부 산하 상품신용공사(CCC)가 수출신용보증(GSM-102) 10억 달러를 지원키로 하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GSM-102는 미국의 농산물 수출지원프로그램이다.
 

19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로 우리 정부는 11월 21일 밤에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 금융을 신청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 후 협상을 거쳐 IMF로부터 12월 3일 550억 달러를 긴급 지원받기로 하면서, 우리경제는 경제주권을 상실하는 상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외환위기는 한 달 만에 3300여개 기업이 도산을 하는 사태로 이어졌고, IMF의 강력한 구조조정 요구로 대기업 그룹도 해체되는 등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패(大馬不敗) 신화도 무너졌다.

그 같은 결과 실업률은 외환위기 발생 직전 3.1%에서 1999년 2월에는 8.7%로 치솟기도 했다. 이런 위기 속에도 국민의 먹을거리만큼은 걱정이 없었다. 곳간에 쌀이 가득했던 결과이다. 당시 쌀마저 부족했더라면 식량폭동까지 겹쳐 나라는 엉망이 되고 말았을 게 명약관화했다.

농업부문은 IMF관리체제로 대변되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숨은 주역이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그동안 망각했던 식량자급, 식량안보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세계 각국이 국경봉쇄에 나서면서 ‘곡물수입에 차질이 빚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낳은 결과이다.

IMF관리체제 때는 나라 안에 외화가 없어서 사료곡물을 사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었다. 이번에는 수출국에서 국경봉쇄, 지역봉쇄 등으로 모든 경제활동이 중단되면서 ‘곡물수입도 불가능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식량안보 우려가 대두됐다.
 

식량안보에 대한 국내 시각은 상반된 의견이 맞선다. 식량안보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지금과 같은 글로벌 물류시스템이 갖춰진 상황에서는 외화만 있으면 곡물은 언제든지 사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농업계가 전자이고, 일반경제계는 후자를 주장하는데,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후자의 주장이 맞지 않는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곡물 수출국의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외화가 아무리 많아도 곡물 수입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얼마 전부터 도입된 식량자주율 개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식량자급률을 올려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식량자주율은 글로벌 조달망 확보를 통해 식량안보를 좀 더 강화하자는 개념이다. 사료용 곡물을 포함한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10년 전만 해도 27% 안팎이었으나 최근에는 24% 안팎에 불과하다. 악화되는 양상이다. 반면 농산물 시장 완전개방으로 해외의존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기후변화현상까지 심화되면서 식량안보 여건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 태풍이 잦아지고, 올해는 3월 이상고온에 4월 이상저온 현상으로 과수, 감자, 옥수수는 물론이고 두릅 등 임산물을 재배하는 농가에서도 냉해 피해를 입었다.

충북 증평군의 한 농가는 연이은 냉해로 식용 옥수수를 3번이나 파종했다. 

식량안보는 정부의 몫이고, 소비자들이 걱정하고 대책을 요구해야할 사안이다.

하지만, 현실은 농업계가 식량안보를 걱정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돼도 이만저만한 상황이 아니다.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범정부 차원의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과 지속적이고 일관된 실행이 절실하다.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