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식 농협대 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 

“당신이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중략) 당신을 향한 마음,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도 끝이 없습니다.” 경북 안동에서 발굴된 한글 편지다. 1586년 쓴 글이지만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의 심정이 생생하게 와 닿는다. 

 

훈민정음 반포가 있기 전까지 오래 동안 문자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한글 덕분에 까막눈으로 살았던 백성들이 연서도 쓰고 벽서도 붙였다. 점차 양반들만 누렸던 지식의 독점도 사라지게 됐다. 훈민정음이 바꾼 세상의 모습이다. 
 

2007년 스티브잡스가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다. “여러분!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제품들이 우리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오늘은 2년 반 동안 제가 손꼽아 기다려온 날입니다. 터치로 조작하는 와이드 스크린, 혁신적인 휴대폰, 획기적인 인터넷 통신기기 이 세 가지를 합친 제품을 선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이폰(i-Phone)이라 부릅니다.” 
 

손에 쏙 들어오는 사각형기기, 이것 하나로 정보공유의 지형이 요동을 친다. 원하는 것의 대부분이 몇 차례 터치로 간단히 해결된다. 이제 인간의 감정과 사고의 영역까지 지배하려 든다. 오죽하면 ‘노모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준말로 스마트폰이 없을 때 불안을 느끼는 증상)라는 말을 케임브리지 사전이 2018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 했을까. 스마트폰이 바꾼 세상의 모습이다. 
 

한글과 아이폰은 존재조차 불분명했던 대중의 욕구를 찾아내고 그것을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다수를 위한 창조적 발명은 오랜 생명력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바꾼다. 
 

코로나사태 이후 뉴노멀이 몰려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대중의 욕구는 무엇일까? 이를 위한 창조적 발명은 어떤 행태여야 할까? 
 

외신 뉴스 하나가 눈에 띈다. ‘식량을 받기위한 끝도 없는 줄···美 푸드뱅크에 늘어선 1만대 차량’ 이것이 머리기사다. 1만2000 대에 달하는 차량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몰렸다는 내용. “은행에 다니며 집도 있지만 두 아이를 배불리 먹일 수 없습니다. 음식을 받기위해 줄을 서는 것이 부끄럽지만 애들을 위해 참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시민의 말이다. 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상황이 급박하면 대중의 욕구도 빠르게 변한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식품사재기 현상만 보더라도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먹을거리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주요 식량 수출국들은 빗장을 걸어버렸고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조차도 머잖아 식량공급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다.  
 

이제 대중을 위한 창조적 발명이 농식품 분야에서 나올 법도 하다. 첨단 인공구조물 안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아파트형 식물공장(버티컬팜, Vertical Farm), 세포공학기술을 통해 동물세포를 배양해서 얻는 인공고기(Lab-grown meat)등에서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국은 곡물자급률이 21.7%, 수치대로라면 78.3%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다. 이런 와중에도 여의도 면적의 60배가 넘는 농지가 해마다 사라지는 특별한 곳이다. 한국이야말로 대중의 욕구를 완전한 식량 확보에 맞추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창조적 발명을 서둘러야 할 첫 번째 나라가 아닐까.
 

한글이 지식의 독점을 허물고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 놓고 소통할 수 있도록 했듯이, 스마트폰이 세계 만인을 삽시간에 정보의 바다로 불러 들였듯이, 이제는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농업의 진화가 세상을 또 한번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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