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은정 동국대 산학협력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유통채널들이 극심한 부진을 겪는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신장한 제품군이 신선식품과 가공식품, 가정간편식(HMR)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식을 꺼리면서 집에서 직접 밥을 해먹거나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하려는 소비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1990년대 3분 카레는 중산층 이상이 먹었던 HMR의 대명사였다. 전자레인지에 몇 분만 돌리면 복잡한 조리과정 없이 따끈따끈한 서양식 카레가 식탁 앞에 차려지고 즐거워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다들 있을 것이다. 편리성만을 강조하던 HMR이 CJ 비비고와 이마트 피코크가 등장하면서 맛과 품질을 다잡은 3세대 HMR의 시대가 펼쳐졌다.

TV속 먹방이 인기를 끌면서 유명셰프가 만든 음식을 집에서 맛볼 수 있는 4세대 HMR이 등장하면서 이제 HMR은 한끼를 대충 때우던 보잘 것 없는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집밥과 유명식당 요리가 남부럽지 않은 다이닝으로 자리 잡게 됐다.

미국 레스토랑 협회의 정의에 따르면, HMR(Home Meal Replacement)은 ‘완전하게 조리가 끝난 식품 또는 가열이 필요한 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식사’로 정의하고 있다.

지난해 HMR 시장규모는 약 2조1900억 원이고 2023년에는 4조 원 가까이에 이를 전망이다(유로모니터). 1인 가구가 30%에 육박하고 두집 걸러 한집이 맞벌이인 가구구조의 변화는 식생활문화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명절 상차림과 제수용품을 HMR으로 차리는 젊은 주부들의 모습이 보수적인 유교문화에서도 낮설지 않은 풍경이 돼가고 있다. 한 유통업체에서는 빈대떡, 고기완자전, 동태전, 식혜, 너비아니, 송편 등 50여 종이 넘는 다양한 명절음식을 HMR로 선보이고 있다.

이마트의 2019년 HMR 제수용품 매출이 20% 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집들이는 또 어떤가? 레드와인 소스 스테이크, 밀푀유나베, 훈제오리, 월남쌈, 쉬림프로제파스타 등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레스토랑 요리를 조리만 하면 되게 손질재료와 레시피를 그대로 배달해주는 밀키트(Mealkit)덕분에 주부들은 우렁각시를 만난 것처럼 고마워한다.

이렇게 시장이 가열되다보니 제조사, 유통사,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너도나도 HMR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소비자에게 러브마크를 받기위해서는 몇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원재료와 생산과정에 대한 신뢰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HACCP(안전관리인증기준)인증을 받은 공장에서 원산지가 명확한 식재료로 만든 제품을 소비자들은 안심하고 구매할 것이다. 거기에 감각적 디자인과 패키지로 오감을 자극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당연히 맛은 전제가 돼야 하겠지만 말이다.

2018년 국가별 1인당 HMR(HMR)소비액을 보면 영국과 미국이 각각 53달러, 49달러인데 비해 한국은 16달러에 그치고 있어 향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한 유통업체의 연령대별 HMR 구매고객 비율을 보면 50대 이상이 44%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도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향후에는 연화식 등 시니어들의 한끼 식사를 책임지는 제품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환자식, 키즈식, 비건식 등 상품의 영역도 더 디테일하게 세분화될 전망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는 HMR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농어촌에도 기회는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 이동거리가 짧은 로컬 식재료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대형 제조사들의 HMR이 시장에 넘칠수록 장인들의 비법과 손맛이 담긴 먹거리에 대한 상대적 희귀성과 신뢰는 높아질 것이다. 농산물의 부가가치 측면에서도 원재료의 가공화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HMR의 증가가 농축수산업계에 약이될지, 득이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소비자 식탁 문화를 바꿔가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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