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선 다변화·식량 조기경보시스템 구축 '자급률 제고' 절실

[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 코로나19 이후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식량안보 개선을 위한 방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곡물 생산국과의 협력관계 구축 
수출금지·제한 예외 협의 유도 등
적극적 노력 필요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곡물류 생산량은 543만 톤으로 전년 대비 1.1% 감소했으며, 전세계 생산량의 약 0.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채소류 생산량은 980만 톤으로 세계 채소류 생산량의 약 0.9%를 차지했다. 또한 국내 소고기 생산량은 전년과 비슷한 28만 톤으로 세계 생산량의 0.7%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1.7%에 불과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국제교역문제 등으로 인한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 식량안보 중요성 인식도↑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는 식량안보의 개념을 ‘모든 사람이 언제나 건강하고 활동적인 생활을 위해 충분하고 안전하며 영양적인 음식에 물리적·사회적·경제적 접근이 가능한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언제든 ‘안전’하며, ‘영양적’인 음식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상황에서 식량안보는 우리와는 먼 이야기로 여겨지기 일쑤지만, 실제로는 모든 국가가 언제나 식량안보의 위기에 처해질 수 있는 상시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곡물(식량)자급률이 낮고 주요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엔 더욱 그 위험성이 크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곡물자급률과 식량자급률은 2018년 기준 각각 21.7%, 46.7%였다. 이 중 쌀은 곡물자급률이 82.5%, 식량자급률이 97.3%로 거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밀의 곡물·식량자급률은 각각 0.7%·1.2%, 옥수수는 0.7%·3.3%, 콩은 6.3%·25.4%에 불과했다.

사실상 쌀 이외의 곡물들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 곡물시장의 작은 변화에도 국내 곡물 조달시스템은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코로나19의 발생과 확산은 우리 국민에게 이 같은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4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하 농경연)이 도시민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전체의 74.9%가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비교해 식량안보가 중요해졌다’고 응답했다. ‘코로나 발생 이전에 비해 국민경제에서 농업이 중요해졌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67.6%로 높게 나타났다. 식량안보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한층 더 높아진 것이다. 이에 식량안보 개선을 위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한두봉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식량안보와 관련해 우리나라처럼 구체적 대책이 없는 나라도 없다”며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쓰나미가 다가오고 있지만 이를 가볍게 여겼다간 최근의 마스크 부족 사태처럼 총체적 어려움에 닥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쌀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한 필리핀

식량안보에 대한 위협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제는 전 세계적인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필리핀은 한때 쌀이 자국 수요를 충족하고도 남아 수출까지 했다. 하지만 관광산업에 몰두하며 농업을 소홀히 한 탓에 1988년부터는 쌀 수입국으로 전환됐고, 2007년 쌀 자급률은 87%까지 하락했다. 2006~2008년 사이엔 연간 약 200만 톤의 쌀을 수입, 세계에서 쌀을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가 됐다.

아울러 지난해에는 ‘쌀 관세화 법(Rice Tariffication Law)’을 통과시키고 쌀 수입 자유화를 선언했다. 이는 민간기업도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하고 수입량 제한을 철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야말로 쌀 산업을 ‘홀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농업 홀대의 결과는 암담했다. 2007~2008년 6개월간 쌀 값이 3배 이상 오른 국제 쌀 값 폭등기에는 물론 최근의 코로나19 발생과 같은 이슈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국 식량 확보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

지난 3~4월 필리핀은 베트남이 코로나19에 대비해 자국민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쌀 수출 중단 선언을 하자 심각한 식량 공급 위기에 처했다. 쌀을 주식으로 하면서도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식량안보 개선 위해 자급률 제고해야

필리핀과 같은 상황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우리나라도 식량안보 개선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위해 국내에선 식량자급률 확보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지난해 말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팀이 발표한 학술보고서에 따르면 ‘식량자급률이 높아지면 식량 가격 변동성이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간 식량안보 개선 방안으로의 자급률 확보에 대한 식량 수출국과 수입국간의 극명한 입장차가 있어 왔는데 식량자급률 확보가 식량안보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명확한 결과를 제시한 것이다.

양 교수팀은 보고서에서 “두 차례의 글로벌 식량위기 당시 발생한 곡물 파동은 자유무역을 통한 식량안보 확보가 허구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식량안보 강화를 위해 식량자급률 법제화 등의 노력과 함께 수입선 다변화, 식량 조기경보시스템 구축·운영 등 다양한 정책 조합들이 고려돼야 한다”고 서술했다.

▲ 울산항에서 이뤄지고 있는 선박 내 사료 곡물 하역 작업 모습.

비상시 대비한 곡물 비축제·국내외 협력관계 구축 중요

식량안보 개선과 관련, 최지현 GS&J인스티튜트 시니어이코노미스트는 곡물 비축제도 확대를 주장했다. 양곡관리법에 따른 비축 대상 곡물은 쌀을 포함한 미곡, 맥류, 두류, 옥수수 등이지만 현재는 쌀과 두류에 대해서만 정부 비축을 하고 있다.

최 시니어이코노미스트는 “민간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곡물 비축을 정부가 일정부분 담당하며 안정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며 “민간에 맡겨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제화를 통해 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진 농경연 해외농업관측팀장은 국가간 협력관계 강화와 독자적 곡물 도입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팀장은 “글로벌 가치사슬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요 곡물 생산국의 국경·항만 등의 폐쇄 조치에 대한 대응 방안이 거의 없다”며 “이들 국가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수출금지·제한 예외 등의 상호협의를 유도하는 등 적극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의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은 2014년 호주와 경제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 일본에 대한 수출금지를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아르헨티나 내 3개 기업, 브라질 내 1개 기업에서 일정 곡물을 일본에 수출할 수 있도록 대규모 금융지원을 하는 등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한 관계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박 팀장은 현재 민간업체가 추진하고 있는 인프라를 비상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 지분 투자나 안정적 판로를 제공하는 등의 의견도 제시했다.

박 팀장은 “현재 산지 곡물터미널·엘리베이터 등에 투자하고 있는 민간업체에 대한 곡물 반입 강제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며 “곡물터미널·엘리베이터를 비롯해 해외 농지 개발·운영 등에 대한 다각적 투자를 통해 비상시 곡물의 확보나 반입을 유도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2010년 국외에서 국내까지 일원화된 곡물 도입 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국가 곡물조달시스템 구축 사업’이 추진됐으나 이후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 결국 모든 계획이 무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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