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식 농협대 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 

「퇴근길에 꽃 한 다발을 샀다. 언제였더라, 기억도 없다. 어색하고 쑥스럽다. 신발도 채 벗기 전에 돌아온 아내의 반응. “비싼 꽃을 뭐 하러 샀어요?” 아차! 불찰이다. ‘로맨스와 현실’의 간극을 깜빡했구나.」 이상은 후배가 늘어놓은 푸념이다. 

 

꽃은 감사, 축하, 희망, 사랑의 상징이다. 그리고 희노애락의 촉매제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뜻깊은 날에는 꽃이 빠지지 않는다. 평상시 쓰는 말조차도 ‘꽃’을 붙이면 부드럽고 정감이 간다. ‘꽃동산’ ‘꽃가마’ ‘꽃사슴’처럼.
 

역사와 문화의 중심에도 꽃이 자리하고 있다. 봄을 맞아 산과 들로 소풍가는 것을 ‘꽃놀이’라 했다. 처자들은 꽃반지를 만들고 봉선화 꽃잎으로 손톱물을 들였다.
 

꽃을 그릇에 담아 손으로 뿌리는 산화(散花)는 존경과 찬양을 표하는 의식으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임금은 친위군장이나 과거 급제자들에게 꽃 모자를 하사했고 이 전통은 조선시대 어사화(御賜花)로 이어지게 된다. 
 

카네이션은 가없는 은혜, 국화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을 연상케 하고, 해어화(解語花), 상사화(相思花)는 애틋한 남녀 간의 사랑을 뜻한다. 어쨌든 꽃은 누구에게나 기쁨과 위안 그리고 감동을 주는 특별한 존재다. 
 

시인 김춘수 님은 ‘꽃은 꽃이라고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된다’고 했다. 거리두기와 마스크에 가려 머쓱하게 혼자서 피고 진 저 많은 꽃들. 목련, 매화, 벚꽃, 개망초…. 하나같이 고운자태와 향기마저 외면당했다. 꽃이건만 꽃이라 불리지 못한 저들의 처지가 안쓰럽다.  
 

그뿐만이 아니다. 졸업식, 입학식이 줄줄이 취소되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꽃 소비마저 얼어붙었다. 꽃은 대개 2월에서 5월, 10월에서 12월 사이 70% 이상 소비가 집중된다. 상반기는 그냥 지나갔고 하반기도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꽃 생산자들의 시름도 깊어만 간다. 일부 기업체 등에서 ‘화훼농가 돕기 꽃 소비 캠페인’까지 벌인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제약회사를 위해 약을 사먹자’는 것처럼 어쩐지 궁색해 보인다. 
 

꽃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부정적이다. 꽃을 사치품으로 여긴다. 조사결과 소비자 32.6%가 돈 주고 꽃 사는 것이 아깝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1년 동안 꽃을 사는데 쓰는 돈이 대략 1만2000원이다. 네덜란드 11만 원, 스위스 15만 원, 노르웨이 16만 원, 일본 만해도 8만 원선이다. 역시 한국은 꽃 사들고 집에 가면 핀잔 듣는 나라가 맞다.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꽃이 생활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세상은 삭막하고 황폐해진다는 사실.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이재열 著'에서 사회학자인 저자는 우리 사회를 ‘3불 사회’라 한다. 3불이란 불신, 불만, 불안을 뜻한다. 유명 칼럼리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뉴욕타임즈에 이렇게 썼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주장만을 내세운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문제를 극단적으로 과장하고 심지어 증오까지 부추긴다.”
 

그렇다. 어디를 가나 반목과 질시가 횡행한다. 영락없이 분노에 차 있는 사회(rage society)다. 이제는 충돌과 마찰을 줄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매끄럽게 해주는 윤활유가 필요한 시기다. 그 감모용 방청윤활제가 ‘꽃’이면 딱 좋을 듯하다.
 

졸업한 제자가 문자를 보내왔다. “교수님 꽃길만 걸으세요.” “이놈아! 꽃 하나 보내면서 꽃길 걸으라고 해라.” 혼잣말이다.
 

꽃을 가까이 하고, 꽃이 가까이 오면 참 좋겠다. 그래야 세상이 밝아지고 ‘웃음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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