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건 농수산물유통공사 프랑스 해외농업정보조사전문위원(파리고등사회과학원 박사과정)

미국에 이은 농업수출 2위의 농업강국이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에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 나라 프랑스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넓은 국토와 좋은 기후가 그 힘의 원천이라면 프랑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농업강국이었을 것이고 프랑스와 비슷한 조건을 갖는 나라는 모두 농업강국이어야 한다.

프랑스 중부지방의 넓은 곡창지대가 부를 축적한 것은 쉽게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척박한 땅을 가진 브레따뉴 반도의 꽃배추와 토마토, 석회자갈밭인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주, 남부고원지대에서 생산되는 염소치즈가 프랑스 시장은 물론 유럽연합시장에서도 잘 나가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다소 엉뚱한 것 같지만 월드컵 4강에 오른 한국축구팀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축구의 저변이나 선수개인의 기량을 고려해보면 유럽의 강호들을 이길만한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둔 비결을 한가지 들라면 바로 조직력이다.

조직능력에 따라 11명의 기량은 그 이상일 수도 있고 그 이하일 수도 있다. 한국팀의 경기를 중계방송하던 프랑스의 해설자는 한국팀의 선수 숫자가 11명이 훨씬 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논평했다.
브레따뉴 지방의 어려운 농업여건만을 놓고 보면 이 지방이 서너 개 품목의 채소만으로 세계 5위권에 드는 프렝스 드 브레따뉴(브레따뉴의 왕자)라는 브랜드를 앞세워서 유럽시장을 누비고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프랑스의 청과물 전문가들은 브레따뉴의 성공은 생산농가들이 조직들을 만들고 또 만들어진 조직들을 연합해서 재조직화하는 한마디로 똘똘 뭉쳐있는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브레따뉴의 예가 전부는 아니다. 품목과 지역에 따라 서로 특징이 다를 뿐 프랑스 어디서든지 찾아볼 수 있다.
뭉쳐야 산다는 한국속담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흔한 말을 직접 실천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프랑스 농업조직들은 오늘의 결과를 얻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극복해왔을 것이다.

프랑스 농업조직의 중심에는 자발적으로 만들고 의무적으로 시행한다는 정신적 지주가 있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농업부문은 농민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참신한 계획도 없고 야심적인 전략도 없는 생명력을 상실한 조직으로 전락한다. 게다가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회의분위기는 알맹이 없는 비판들로 무성하게된다.
의무적인 시행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조직원들이 스스로 만든 규정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존중한다는 것이다. 회비납부, 전량출하는 물론이고 경작신고, 품질규범준수 등 생산에서 출하에 이르는 전과정에서의 엄격한 의무사항들을 준수한다. 이런 규정내용들의 엄격성은 그 조직의 능력을 평가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프랑스의 조합들은 조직의 목표를 분명하게 정의하고있다. 청과물 협동조합의 목표는 간단명료하다. 조합원들이 생산한 상품을 좋은 가격에 더 많아 팔아서 더 높은 소득을 올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논리와 시장마인드만이 조직을 지배할 뿐 정치적이나 인간적인 이해관계는 철저히 배제한다.

시장출하조직의 규모를 일정수준이상으로 키우기 위해서 기존의 조직들을 과감하게 통폐합하거나 연합그룹을 결성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시장의 새로운 요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작은 조직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능력있는 전문영업요원의 기용, 시장정보 분석, 기존시설들의 효율적 가동, 연구개발, 마케팅 등을 위해서는 출하조직의 규모화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프랑스의 농업의 힘은 바로 이런 조직의 능력을 키우고 중단 없는 자기혁신의 결과에서 얻어진 것이다. 정부은 이런 조직화를 독려하면서 자기혁신을 추진한 조직만이 이길 수 있는 시장경쟁의 규칙을 만들고 감독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농업이 프랑스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조직능력과 농업의 힘의 관계다. 뭉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려는 노력 자체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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