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영 전 미국대두협회 회장
훼손된 사회 역동성이 프랑스 와인 산업에 미친 영향
최근 프랑스 와인 양조장들이 당장 마실 수 있게 잘 숙성된 와인을 손 세정제 원료로 헐값에 팔아 넘기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창궐로 수요가 대폭 감소돼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있었던 데다, 금년도 생산될 와인을 저장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재고 와인을 이렇게라도 처분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정부가 제공하는 리터 당 미화 1달러가 채 되지 않는 지원금을 받고, 생산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가격에 손 세정제 원료로 처분하는 와인양조장들의 수는 프랑스 전역에서 5000여 곳이 넘고, 그 양은 대표적 화이트와인 주산지인 알자스 지방에서만 무려 600만 리터를 넘길 것이라고 한다.
EU와 무역마찰로 미국이 프랑스 와인에 부과하는 25%관세의 충격은 국제시장에서 누리는 브랜드파워에 힘입어 어렵사리 버티어 내던 프랑스 와인산업이었지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너, 나 할 것 없이 실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와인’을 화두로 떠 올려본 것은 훼손된 사회역동성 관점에서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강제적 방역 정책의 명과 암
세계경제는 90여년 전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후 최악의 충격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백신이나 치료약의 개발로 코로나19가 통제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바이러스가 통제될 수 있고, 세계경제가 다시 복원되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이다. 때문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에게 가한 가장 심각한 피해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로 엉망이 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삶이다.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창궐하기 시작한 지난 3월부터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동 금지 (locking-down), 개인간 안전거리 유지 (social distancing), 그리고 자가격리 (self-quarantine) 방역정책을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검진과 전염경로 추적 (test-and-trace)도 병행해 오고 있다. 이러한 방역정책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 권리인 신체적, 사회적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개인 위생 측면에서 서로를 경계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표준이 되었고, 요즈음 같은 국제화 시대에 해외여행은 일정기간 사회로부터 격리가 뒤따르게 된다. 그런가 하면 바이러스 검사 결과 양성으로 밝혀지면 본인과 노출된 주변 사람들의 개인정보는 공개되고 사생활은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된다.
의미 있는 예외가 있다면 바이러스위협에도 일상적인 삶을 우선할 것인지, 아니면 정부주도의 방역을 우선할 것인지를, 개인의 사생활과 행복 추구권리로 접근해 국가권력에 의존한 방역 대신 집단면역 (herd immunity)을 추구하고 있는 스웨덴 정도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압도된, 21세기 오늘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오늘 날 지구인들이 누리는 문명의 혜택은 인터넷, 인공지능, 빅 데이터, 모빌리티, 글로벌라이제이션, 혁신 등으로 특징 지어질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지구인들의 삶에 투영된 21세기 오늘은, 미생물인 바이러스로부터 ‘신체적 안전’을 지키려는 욕구에 함몰되어 있다.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지금 현재’의 상황이다. 또, 백신이 개발 되어도 80억에 육박하는 세계인구 중 적어도 30-40억 명에게 접종될 수 있을 때까지 시간과의 싸움이 뒤따른다.
2주간 시행된 ‘2.5단계 방역’정책과 이에 호응한 시민들의 바이러스에 대한 높아진 경계심으로 하루 500명에 육박했던 신규 케이스가 100명대로 감소되는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지난 6개월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신규 케이스의 감소가 시민들 삶의 정상화로 직결되는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하여 가을에 시작되는 계절적 독감이 소멸되는 내년 봄까지는 바이러스에 대한 고도의 경계심과 불안으로 파행적인 일상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의료·보건 전문가들의 경고이다.
삶을 긴 호흡으로 접근해도 평균수명 80여년 남짓이고, 적절한 배움의 때로 접근하면 초, 중, 고, 대학 16년이다. 그 중의 1년 이상을 계속해서 동일한 바이러스에 대한 위협에서 오는 긴장과 불안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은 차치하고, 해야 할 일도 변변히 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게 보내게 되는 것이다.
위기에서 빛난 시민의식 그리고 우리 농업에 대한 재조명
코로나19로 인한 파행적인 삶에서 많은 영웅들을 만나게 된다. 최전방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과 감염의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가는 119 구급대원, 일선 보건소 요원이 그들 이다. 또 생필품을 현관 앞까지 배달해주는 택배기사에게서 전선을 지키는 용사가 연상되는 것은, 감염위험을 무릅쓴 그들의 수고에 의해 우리의 일상적 필요가 해결될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리라.
또한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을 소비자행동 관점에서 살펴보면, 시장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들임을 알게 된다.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한 이래, 쌀과 채소, 육류, 생선 등 중요 식자재의 사재기가 없었다는 사실에 국민적 자부심을 갖게 된다. 동료 시민들의 ‘대한민국에서 쌀 못 사서 굶고 계란, 우유 떨어져서 영양실조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희망’바이러스가 돼 서로에게 안도감을 주고 격려가 돼 성숙한 시민의식을 작동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그 믿음의 바탕에는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한 쌀 부족을 극복해 낸 우리 농업의 능력에 대해 국민들이 갖는 자신감과 프라이드, 그리고 신뢰감이 있다는 필자의 관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1950 -1970년대에 걸쳐 우수한 인재들이 선진조국의 비전을 공과대학에서 찾았기에, 오늘날 GDP기준 세계 10위 경제 강국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코로나19 창궐을 계기로 21세기 오늘에도 여전히 생명산업으로 작동하는 농업이 재조명되고 있다. 시장에서 만나는 동료 시민들이 우리농업에 보내는 믿음과 기대, 그리고 신뢰가 우수한 인재들을 농과대학으로 향하게 하는 동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