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소비+편리미엄 바람타고 꽃·과일·반찬·쌀까지
정기구독 '전성시대'...편리함·비용절감에 고객 호응 높아

'식품구독경제이용실태' 조사결과
응답자 57.2%가 식품구독서비스 이용

30대가 구독경제 이용률 가장 높고
식품구독경제는 40대서 가장 많이 이용

농축산물 구독서비스 업체
소비자 눈길 끌기 위해
독특한 아이템·마케팅 전략으로 승부수
사육·제조 환경 차별화 둔 프리미엄 상품 눈길

농산물 판로 확대·가치 재발견 등 긍정적 효과
개인 맞춤형 구독서비스 등 색다른 경험·재미 추구
취향 확고한 젊은 소비자에 높은 만족도 제공

소규모 농가, 상품 구색 갖추기 쉽지 않고
관리 어려움·투입 비용 부담 등
직접 구독서비스 플랫폼 운영에 한계
지역 단위 농가 조직 기존 플랫폼과
연계·지원하는 방안 등 고민해야

[농수축산신문=안희경·이문예·권소완 기자]

서울 구로구에서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 자매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 소정연(43) 씨는 일어나자마자 정기구독하고 있는 유제품과 두부로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고 출근한다. 가까운 어린이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소 씨는 출근 후 어린이집에 배달된 정기구독 꽃을 정리해 어린이집 현관에 꽂아 둔다. 퇴근 후에는 대형마트에서 한 달에 네 번 피자를 살 수 있는 정기구독권으로 피자를 구매해 아이들과 저녁을 해결할 생각이다.

신문과 우유배달 등에 주로 이뤄지던 정기구독이 코로나19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확대된 온라인 시장과 만나면서 소비자들의 생활 곳곳에 젖어들고 있다.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영양제에서 아이스크림과 같은 기호식품은 물론 꽃, 과일, 반찬, 쌀까지 이젠 그야말로 식품을 구독하는 시대가 됐다.

식품시장에 불어온 구독경제바람. 농수축산업은 무엇을 읽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구독경제, 코로나 이후 폭발적 증가

소비자가 정기적으로 일정 비용을 지급하고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방식인 구독경제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 경향이 짙어지면서 확산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715일부터 24일까지 13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의 식품구독경제이용실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2%가 식품구독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구독경제 이용률이 가장 높았지만 식품구독경제는 40대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실질적으로 가정식을 책임지는 세대에서 식품구독경제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식품 구독서비스 이용자는 쿠팡, 마켓컬리 등 정기배송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었으며 그 다음으로 밀키트, 도시락 등이 뒤를 이었다.

식품 구독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편리한 배송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이는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서라는 응답 비중도 다소 높아 매번 구입해야 하는 식품을 저렴한 가격에 편리하게 배송받기 위해 구독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구독에 비해 식품구독 서비스 이용자의 월평균 이용 비용이 높게 나타났으며 월 10만 원 이상 지불하고 있다는 응답도 7%에 달해 향후 식품구독 서비스의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못난이 농산물로 판로 개척

이렇듯 식품구독서비스가 확대되는 가운데 농축산물 구독서비스 업체들은 최근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독특한 아이템과 마케팅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우며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어글리어스는 못난이·B급 농산물을 시중 가격보다 30% 정도 저렴하게 정기배송하고 있다. 못난이·B급 농산물은 품질에는 이상이 없지만 크기, 모양, 중량 등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시장에서 판매되지 못한 농산물을 말한다.

정기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2주에 한 번, 1~2인 가구에 적합한 6~8가지 친환경 채소·과일로 구성된 박스를 받아볼 수 있다. 배송 횟수는 소비자가 원하는 기간만큼 선택할 수 있다. 배송된 농산물을 이용해 소비자가 요리할 수 있도록 조리법도 동봉된다.

농가들은 유통기준에 맞지 않아 폐기해야 했던 농산물을 판매해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소비자들은 주기적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박종서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사무총장은 못난이 농산물의 판로가 없는 경우 몽땅 폐기돼 농가 소득 하락, 환경문제 등을 야기했다농가와 소비자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새로운 농산물 구독 모델이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다. 고객들은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품질도 훌륭해 깜짝 놀랐다는 반응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최근 트렌드에 맞춰 이러한 상생 구독 모델은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개인 맞춤형 서비스 제공·프리미엄 상품 눈길

정기적으로 상품을 배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관리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을 유치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배냇이 운영하는 이유식 정기배송 서비스 배냇밀은 전문가의 상담·추천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비자는 이유식 플래너와 1:1 상담을 통해 아이 건강상태와 식습관을 고려한 식단을 추천받을 수 있고 자녀 월령, 배송 횟수와 요일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단순한 상품 선택에서 벗어나 관리 서비스를 경험한 고객들은 큰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사육·제조 환경에서부터 차별화를 둔 프리미엄 상품으로 소비자를 공략하기도 한다.

구쁘는 직영농장에서 생산한 고품질의 계란을 정기배송하는 업체다. 구쁘는 닭에게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곡물 사료, 자연숙성 발효액을 급이해 키운다. 일반적인 평사보다 넓은 실내에서 방사하며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맞추고, 녹색축산 인증 등을 받아 프리미엄 상품으로써 입지를 굳혔다.

비유전자변형식품(Non-GMO)·동물복지 등 가치소비, 착한소비를 하는 소비자를 공략하는 여러 업체들도 하나 둘 생겨나며 소비문화의 다양화를 선도하고 있다.

 

구독서비스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

구독서비스 품목은 농식품, 음료, 생필품 등을 넘어 무궁무진하게 다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꽃 구독서비스가 인기를 끌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화훼농가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꽃을 판매하는 업체 꾸까(kukka)’는 국내 최초로 꽃 정기구독 서비스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는 플로리스트가 직접 구성한 꽃을 원하는 가격대로 골라 2주 간격으로 받아볼 수 있다.

박춘화 꾸까 대표는 국내 구독서비스가 처음 도입될 당시 한국에서는 정기결제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많은 소비자들이 구독서비스에 익숙해진 모습이라며 꽃 구독서비스 확산이 정기결제에 대한 소비자의 심적 부담을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꾸까의 꽃 정기구독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는데, 이는 구독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진입장벽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농축산물 구독서비스, ‘구독경제의 핵심

구독경제의 전망은 밝다. 미국의 시장조사·컨설팅 회사인 가트너는 ‘2023년이면 소비자가 제공받는 서비스의 75%는 구독화 된다고 예측했다. 구독이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구독화가 이뤄진다고 본 것이다.

구독경제의 확장성에 대한 이 같은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특히 농축산물 구독서비스 시장에서의 확장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센터장은 구독서비스 시장은 현재 진입기에 있으며, 향후 성장기에 들어서며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농축산물 구독서비스는 구독경제의 핵심이라고 봐도 과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 센터장은 신선식품은 신선도 유지의 어려움으로 수입식품의 진입이 쉽지 않은 시장이어서 국산 농축산물을 활용한 구독서비스의 확장 가능성은 매우 크다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어려워지며 구독서비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됐다는 점도 이 같은 가능성을 더욱 확대시킨다고 말했다.

농축산물 구독서비스 확대는 농산물 판로 확대와 가치 재발견 등의 긍정적 효과도 나타내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품질에는 문제가 없지만 크기나 당도 등에서 상품가치가 떨어져 버려지는 B급 농산물이 전 세계적으로 한해 13억 톤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음식물 소비량의 3분의 1에 해당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다.

최근 몇몇 농산물 구독서비스 업체는 이 같은 B급 농산물을 정기구독 서비스 형태로 판매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그동안 상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품질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졌던 B급 농산물들의 새로운 판로를 확보하고 소비자 인식 전환을 통해 B급 농산물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아울러 농업인들은 한꺼번에 먼저 정산을 받아 안정적으로 농업을 영위할 수 있고, 농업소득 증대 효과도 누릴 수 있게 됐다.

소비자들도 불필요한 선택 피로감을 덜고 다양한 제철 농산물을 비대면으로 편리하게 받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더욱 확대되고 있는 개인 맞춤형 구독서비스 등은 색다른 경험과 재미를 추구하며 본인만의 취향이 확고한 젊은 소비자들에게도 높은 만족도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지자체 주도 플랫폼 구축...‘소상공인 구독경제 생태계 조성필요

하지만 농축산물 구독경제가 지속가능한 형태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맥킨지앤드컴퍼니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구독서비스 이용 경험자의 3분의1 이상은 3개월 이내에 구독을 취소했다. 특히 간편식 서비스 이용 경험자는 60~70%6개월 내 구독을 취소, 장기 이용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소 이유로는 낮은 품질과 구성품에 대한 불만족, 낮은 가성비 등이 꼽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직화나 정부·지자체 등의 지원을 통한 구독서비스 플랫폼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종서 사무총장은 소규모 농가들의 경우 상품 구색을 갖추기가 쉽지 않고 관리의 어려움, 투입 비용 부담 등으로 직접 구독서비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지역 단위 농가 조직을 기존 플랫폼과 연계·지원하는 방안 등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호겸 센터장은 소상공인 구독경제 생태계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 센터장은 구독 플랫폼 구축은 개개인이 직접 뛰어들긴 어려운 영역인 만큼 정부나 지자체가 플랫폼을 구축하고 관리하며 농가들이 지역별·품목별로 조합 등을 구성,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소비자가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서비스로 옮겨가기 어려워지는 현상인 자물쇠효과’(락인효과, Lock-in effect)를 강조하며, 구독경제 생태계 구축이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센터장은 일본과 중국 등은 우리보다 구독경제가 훨씬 잘 자리 잡았고 빠르게 성장 중인데, 국산 농축산물 구독서비스 시장이 하루빨리 구축되지 않는다면 향후 이들에게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구독경제는 자물쇠효과가 있어 처음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가 중요한 만큼 정부도 강력하게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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