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자격 없어도 누구나 어선 설계·건조…관리 사각지대
해수부, 어선 전 과정 정책 수립해야

 

어선은 연근해어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본재이지만 이에 대한 관리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어선의 건조·등록부터 안전성 검사, 유지·보수, 폐선에 이르는 전 과정이 일정한 기준하에서 관리돼야 하지만 각 단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국내 어선관리제도와 개선방안에 대해 짚어본다.

# 누구나 할 수 있는 어선 설계·건조

어선을 관리하는데 있어 우선 제기되는 문제는 어선건조에 어떠한 자격도 필요 없으며 등록절차조차 없다는 점이다.

육상과 항공분야의 제작자는 관련법에 따라 등록과 승인을 의무화하고 있다. 실제로 자동차는 자기인증 승인 절차가 있고, 철도는 형식승인과 제작자 승인절차가 있으며, 항공기는 제작증명이 필요하다. 일본은 소형선 조선업법에 따라 강선과 목선을 건조하려는 조선소에 등록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노르웨이는 자발적으로 등록한 자국의 조선소에 대해 길이 8~15m 미만의 어선과 화물선을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했다.

더불어 어선건조시 어떠한 자격요건도 필요 없다. 조선업의 경우 조선산업기사와 조선기사. 조선기술사, 동력기계정비기능사, 선체건조기능사, 전산응용조선제도기능사 등 다양한 국가기술자격증이 있으며 산업현장에서 실제로 활용되고 있다. 반면 어선은 이 같은 자격증이 없고 요구하지도 않으며 등록조차 필요 없기에 사실상 누구든지 어선건조업에 뛰어들 수 있다. 물론 중소형선박도 관공선 등 직접생산증명서를 요구하는 선박의 경우 선박건조를 위한 시설과 장비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어선의 경우 개인자격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 같은 시설이 필요없다. 심한 경우 조선소라는 이름조차 없는 곳에서도 어선을 건조할 수 있는 것이다.

어선의 안전과 직결되는 설계 역시 마찬가지다. 건축설계는 전문기술인력인 건축사의 참여가 의무화돼 있으며 일정규모 이상으로 건축시 설계 또는 공사감리 등 전문가의 검증이 필요하다. 반면 어선은 설계마저 자격요건이 필요 없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고동훈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박사는 수천톤, 크게는 수만톤에 달하는 선박에 사용되는 기술들을 규모가 작은 어선들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어선안전은 설계·건조단계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하는데 어선은 그 과정에서 어떠한 기술적인 자격요건도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어업인 보호 못하는 어선정비업

어선 정비 역시 어떠한 자격을 갖추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어선의 엔진은 자동차의 엔진과 마력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어업현장에서는 엔진 등 기관을 다룰 수 있다면 누구나 어선을 정비할 수 있다. 국가가 공인하는 자격뿐만 아니라 등록조차 되지 않고 있다. 통상적으로 어선의 엔진을 개방할 경우 1마력당 10만 원 가량의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기술력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도 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기관뿐만 아니라 축계나 전기, 고압가스 등과 관련한 장비들도 마찬가지다. 선박의 프로펠러 축계는 중간축과 스러스트축, 프로펠러축 등 3개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은 어선의 움직임을 좌우하기에 어선의 안전과 직결된다. 또한 어선 내에는 다양한 전기설비와 가스와 관련한 설비가 있는 배들도 있다. 이들 설비 역시 화재나 폭발 등 안전과 직결되는 부품들이지만 일정한 자격요건이나 등록 등의 절차가 없어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 육상의 경우 전기설비시 사업자 요건, 안전설비업체 등 모든 것이 법제화돼있지만 선박과 항공은 예외다. 가스 역시 가스안전관리법이나 석유류 안전관리법 등에서 선박을 예외로 하고 있다. 항공산업은 육상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반면 어선은 사실상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

모승호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검사안전본부장은 어선의 안전을 위해서는 선체와 엔진, 전기 등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 사람들에 의해 유지·관리가 이뤄져야 하는데 어선은 이와 관련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소비자로서 어업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어선의 안전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육상처럼 일정 수준의 관리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관리 사각에 놓인 조선소, 불법 증·개축으로 이어져

조선소들이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않는 것은 불법 증·개축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진 의원(더불어민주, 수원병)에 따르면 현행법상 건축과 철도, 항공 등 유사 다중이용시설물은 관련 법률에 따라 생산업체가 일정한 기준을 충족했을 경우에만 허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선은 전문적인 자격요건이 없이 어선을 건조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조선소들은 별도의 등록절차 없이 어선을 건조하거나 증·개축을 하고 있다.

이처럼 어선의 건조나 증·개축 과정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것은 어선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불법 증·개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소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다보니 어선의 증·개축시 조선소가 불법 증·개축임을 알고도 고객인 선주의 입장만을 반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김 의원은 지난해 9월 어선 건조업을 하려는 경우 일정 요건을 갖춰 해양수산부에 등록을 하고 이를 위반시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어선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진송한 중소조선연구원 친환경선박연구본부장은 어선을 건조하는 조선소에 일정한 자격이나 등록절차를 요구하지 않다보니 수익을 위해 선주의 뜻에 따라 어선을 증·개축하게 된다이는 고객인 어업인에게도, 조선업계도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 열악한 조선소, 환경문제로 이어진다

어선건조업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은 환경문제로 이어지는 동시에 조선소의 난립으로 중소조선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어선건조에 이용되는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은 유리섬유를 교차해서 쌓고 각 유리섬유사이를 수지(레진)를 이용해 접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적당한 강도에 제작비용이 저렴하고 제작이 쉬우며, 부식에도 강하다. 이 때문에 FRP어선은 급격히 증가, 2019년 기준 전체 동력어선의 96%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99215%에 불과했던 FRP어선 척수는 2019년 기준 동력어선 65050척 중 96.41%62721척에 달했다.

FRP어선이 급격히 증가한데 비해 FRP 어선을 건조하는 조선소는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FRP어선은 주로 해안가에 위치한 영세한 조선소에서 건조하는데 FRP어선 건조과정에서 표면을 다듬는 그라인딩 작업시 다량의 FRP가 발생한다. 발생한 FRP를 어류가 먹을 경우 미세플라스틱처럼 축적될 수 있으며 인체에 닿으면 피부 발진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FRP선박은 집진시설을 갖춘 밀폐식 시설에서 건조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FRP어선을 건조하는 조선소에 이 같은 시설을 요구하지 않는다.

더불어 FRP는 건조부터 증·개축이 쉬운 터라 조선소가 난립, 중소조선업의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소가 난립할 경우 기술이 아닌 가격경쟁에 집중하게 되고 이는 충분한 기술력과 시설, 장비 등을 갖춘 업체들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기 때문이다.

중소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대로 된 조선소에서 강선을 한 척 건조하는데 25억 원이 든다고 하면 시설을 거의 갖추지 않은 곳은 15억 원에도 건조할 수 있다이처럼 가격만으로 경쟁할 경우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오히려 불리해지고 이는 곧 중소조선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폐기물처리업체도 거부하는 FRP어선

국내 어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FRP어선의 폐선과정 역시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FRP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소재로 폐기물처리 업체에서도 FRP어선의 처리를 거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FRP어선의 폐선을 위해서는 기관 등 관련 설비를 모두 제거한 어선을 인양해 해체작업을 거치고 파쇄 후 소각 등을 통해 처리된다.

어선은 선박 내부의 흡음과 단열, 불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라스울 소재로 내부를 시공한터라 처리가 까다롭다.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조업하면서 더불어 FRP의 경도가 우수하다보니 파쇄과정에서 고가의 장비에 손상을 입힐 가능성도 있는데다 소각과정에서는 유리섬유가 분진시설을 훼손시켜 폐기물처리업체에서 FRP 어선의 처리를 꺼린다는 것이 현장의 전언이다. 또한 FRP는 지정폐기물로 분류돼 매립이 불가능하며 파쇄처리된 FRP를 소각하는 과정에서는 다이옥신 등 유독물질이 다량 배출될 우려가 있어 전문업체에서 소각해야한다. 이 때문에 어업인들이 부담해야하는 비용도 적지 않다.

결국 어촌 곳곳에서는 폐 FRP 어선을 무단으로 방치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해경뿐만 지방해양수산청, 지자체 등은 방치된 어선으로 인한 피해를 막고자 일제단속을 실시하는 등 꾸준히 단속을 해야하는 실정이다.

폐선이 임박한 FRP어선들이 늘어나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선령 21년 이상의 노후어선은 15925척으로 이중 4827척은 선령 26년이 넘은 어선이다. 향후 10년 내에 노후어선이 되는 선박 역시 25273척에 달해 FRP어선의 폐기 또는 재활용을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고동훈 박사는 어선의 설계·건조단계부터 폐선에 이르는 과정은 경제적 효과 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미치는 영향이 큰데 이 모든 과정에서 일부분만 정부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특히 정부의 선질개량사업으로 급격하게 늘어난 FRP어선들의 폐선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FRP어선의 폐선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어선의 전 주기적인 관리방안 마련돼야

어선의 안전과 어선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선의 전 주기적인 관리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어선의 건조부터 폐선에 이르는 과정을 담당하는 정부부처별로 나눠보면 어선의 건조단계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업과정의 안전 등은 해양수산부, 폐선단계는 환경부의 소관업무다. 국내 조선업계는 현대중공업의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등 조선업계 빅3를 중심으로 대형 선박의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생산액이나 국내 경제에서의 기여도 등을 감안할 때 중소조선업계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분야인 어선은 정책적인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선의 폐기문제에 정책적인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은 환경부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규제가 날로 강화되면서 폐기물처리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신영증권은 국내 폐기물 시장의 규모가 2015135000억 원에서 올해 194000억 원, 2025237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국내 연근해어업과 양식어업, 원양어업, 내수면어업 등 모든 수산업의 생산액이 지난해 기준 87493억 원 수준으로 폐기물산업이 국내 모든 어업 생산액의 2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를 감안하면 환경부가 어선의 폐선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해수부는 조업과정에서의 안전만 주로 담당하다보니 정책적인 관심도 역시 어선의 안전성 제고에 그치고 있으며 이마저도 어업생산력의 증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어선법은 제1조에서 어선의 효율적인 관리와 안전성을 확보하고 어선의 성능향상을 도모함으로써 어업생산력 증진과 수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수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조선산업이나 폐기물산업 모두 국내 굴지의 대기업·중견기업들이 뛰어드는 산업인만큼 산자부나 환경부의 정책적 관심이 이들에게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즉 어선의 건조부터 폐선에 이르는 전 과정에 관한 정책은 결국 해수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승호 본부장
모승호 본부장

 [인터뷰] 모승호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검사안전본부장

어선은 어업인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안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선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선의 건조단계와 정비단계를 보다 체계화해야합니다.”

모승호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 검사안전본부장은 어선의 건조단계와 정비단계와 관련한 제도를 보다 체계화해야한다며 운을 뗐다.

모 본부장으로부터 어선관리제도에 대해 들어봤다.

# 어선건조업 등록제도가 왜 필요한가.

어선은 설계-건조-운용·정비-폐선이라는 주기를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관리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부터 우선 관리해야한다.

어떤 제품이든 제조과정에서 일정한 표준이 필요하고 작업자에게는 일정한 경력이나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어선건조에서는 이 같은 표준이나 기준이 없다.

연근해어선은 대부분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만들어지는데 FRP는 습도에 굉장히 민감하다. FRP로 어선을 건조하는 작업자가 이 같은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어선을 건조해야하며 부분적으로라도 습도를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최소한도의 작업장 기준이라는 게 있지만 이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조선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인 어업인과 직결된다. 어업인들은 안정적인 품질을 원하는데 어선 건조와 관련한 기술이나 설비 등이 투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을 하다보니 어업인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 이는 종종 분쟁으로도 이어진다.

어선건조업 등록제도는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어선건조업자의 시설요건이나 작업장의 품질기준, 작업자의 자격에 대한 관리를 통해 어업인과 어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 정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유는.

어선의 정비는 건조단계와 동일한 맥락에서 중요하다. 어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건조도 잘 해야하고 잘 만들어진 어선을 주기적으로 잘 관리해야한다. 국제항해선박들은 선박예방정비(PMS)를 하는데 어선도 이 같은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비업계가 투명하지 않다보니 어업인들의 불만이 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이 육상의 자동차를 떠올리면 된다. 자동차는 시설면적과 보유한 장비, 정비·검사기구, 시험·측정기구, 공작기계 등에 따라 자동차종합정비업, 소형자동차종합정비업, 자동차전문정비업, 자동차원동기정비업 등으로 나눠지게 된다. 이 같은 제도들을 통해 육상의 정비업은 투명해졌지만 어선분야는 여전히 깜깜이인 상태다.

물론 KOMSA에서 어선에 대한 주기적으로 검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어렵다. 자동차 검사를 받는다고 해서 자동차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주기적인 정비와 관리일 수밖에 없으며 정비업 등록제처럼 일정한 관리를 통해 정비의 품질을 높여 나가야한다.

실제로 영흥도에서 열린 어업인을 위한 정비행사에서 영흥도의 어업인 대표는 어선정비업을 육상처럼 투명하게 해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안전도 문제이지만 이는 어업인들이 어선정비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명하지 않은 어선정비시장 때문에 어업인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단계적으로 이를 개선해나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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