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올해도 전국의 과수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 안성에서 지난 4일 올해 처음으로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이후 확산세가 짙어지며 농가와 방역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매년 과수 농가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지만 달리 치료제가 없다는 점은 과수화상병 대응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과수화상병의 방제 효율을 높이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해 2월 전북 무주군 겨울철 과수화상병 사전 예방 현장 점검 모습
지난해 전북 무주군 겨울철 과수화상병 사전 예방 현장 점검 모습

 

# 매년 발생면적 확대 추세...과수업계 불안감 확산

과수화상병은 ‘과수의 구제역’이라 불리는 세균병으로, 잎과 줄기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타들어가는 증상을 보인다. 치료제가 없고 확산 속도가 빨라 모든 국가에서 매몰을 통해 확산을 억제하는 방제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선 2015년 경기 안성에서 처음으로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이후 발생 건수와 면적이 매년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발생 농가와 면적이 소폭 감소했지만 감소세나 안정세로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과수화상병 발생 현황을 보면 국내 발생 첫해인 2015년에는 43농가·42.9ha에서 피해가 발생했고, 2016년 17농가·15.1ha로 잠시 주춤하더니 2017년 33농가·22.7ha, 2018년 67농가·48.2ha로 계속해서 급격한 확산세를 보였다. 지난해에는 618농가·288.9ha로 2016년에 비해 피해 농가수는 36.4배, 피해 면적은 19.1배 증가하는 등 정점을 찍었다.

소규모이지만 매년 신규 발생지역도 나타나고 있다. 2020년 충북 단양과 괴산 등에 이어 지난해에는 사과 주산지인 경북 안동과 영주에서 과수화상병이 첫 발생하며 과수업계의 불안감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매년 과수화상병 신규 발생지역이 생겨난다는 것은 현재의 예방적 방역체계의 효과가 미흡하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과수 농가의 적극적 방제 참여, 정부·지자체의 지원 확대 등과 함께 과수화상병 연구개발 인프라 확대, 저항성 품종 개발·보급 등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책 마련이 강조되고 있다.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배나무 잎의 모습[사진제공=농촌진흥청]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배나무 잎의 모습[사진제공=농촌진흥청]

 

# 장기 전략과 투자·저항성 품종 개발·보급 필요

과수화상병은 1780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1900년대 이후 전 세계로 본격 확산됐다. 이에 비해 과수화상병 청정국이던 우리나라는 발생국으로 전환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관련 연구 등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때문에 많은 부분 해외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방제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방제체계의 효과 제고를 위해선 국내 실정에 맞는 방제기술의 연구·개발 등을 장기적 관점에서 이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과수화상병 관련 보고서를 통해 “(2020년 발생 경향을 보면) 과수화상병이 정부가 중점관리했던 기존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등 예방방제의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며 “방제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식물방제 기술과 금지병해충 관련 기초·응용 연구·개발 기반 구축, 연구결과의 축적, 현장적용과 검증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선 장기적 전략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미 오랜 기간 국가 차원에서 과수화상병을 관리해 온 미국의 경우 장기적 관점에서 저항성 품종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저항성 품종 등을 연구·개발하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농가에 보급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박인곤 신젠타코리아 R&D본부장은 “국내에선 사과는 후지, 배는 신고 등 일부 품종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해 기존의 품종을 저항성 품종으로 대체하는 게 사실상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세균을 완벽 차단하지 않는 한 질병의 예방과 확산 저지에 한계가 있는 만큼 다양한 발생·확산 저지 방법들을 효과적으로 국내에 안착시키고 적용하기 위한 방안들을 고민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면역유도제 교호살포·연구 활성화 방안 등 고민해야

최근에는 면역유도제 등의 교호살포(번갈아 살포)도 과수화상병 방제법의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미국 정부 의뢰로 진행된 워싱턴 주립대학교의 연구(2013년 발표)에 따르면 과수화상병 약제로 사용되는 항생제의 단일 살포에 비해 면역유도제의 교호살포 시 항생제 효능이 10% 이상 증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선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가 여럿 발표되면서 면역유도제 교호살포 방식이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말 처음으로 과수, 채소에 적용할 수 있는 면역유도제가 등록돼 올해부터 항생제와 함께 살포하는 농가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과수화상병에 대한 확실한 방제를 위해선 보다 활발한 연구활동이 가능한 환경 조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과수화상병은 식물방역법상 ‘금지병’으로 분류된다. 엄격히 통제된 생물안전관리 3등급(BL3) 격리연구시설에서만 병원균 실험을 할 수 있다.

최형우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금지병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100% 방제를 목표로 한다는 의미인데 이를 위해선 단순히 현재처럼 해외 사례를 국내에 적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더 적극적인 방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며 “정부가 지금처럼 금지병으로 관리할지, ‘위험병’으로 단계를 낮춰 관련 연구 활성화를 꾀할 것인지 질병 접근법에 대한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생물안전관리 2등급(BL2)까지 낮춰 과수화상병 다발지역인 경북을 비롯해 지역 기관들의 연구를 활성화하고 상호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다만 신뢰할 수 있는 관리기관들을 둬 안전과 규제 관련 문제들을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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