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대체작목 단지 조성…재배면적 줄이고 생산량 예측 '고도화' 필요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나락(벼) 값이 시쳇말로 ‘나락(奈落)’으로 가고 있다.

농협과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등에 따르면 최근 농촌지역에서 거래되는 벼값(40kg)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6월 말 현재 5만2000원 가량이다. 이 가격대도 지지가 안돼 조만간 5만 원대마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조속한 3차 시장격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농업계의 성토가 연일 지속된 이유다.

소비자가 구입하는 쌀가격 역시 곤두박질 중이다. 현재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는 10kg 농협쌀이 2만5000원 전후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중 최저가격이자 몇 년 전의 반값이다. 이처럼 낮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소비는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국민의 주식인 쌀의 생산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쌀 산업을 안정화시킬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37만 톤 시장격리해도 가격 하락 우려 여전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25일 산지 쌀값(20kg)은 4만5215원으로 지난해 6월 25일과 비교해 19.1%나 하락했다. 이는 지난해 수확기와 비교해 1만 원 가량 하락한 가격이며 2018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이다.

문제는 가격이 더 하락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현재 지속적인 가격 하락으로 현장에서는 가격을 포기하더라도 재고를 덜겠다며 시세 보다 낮은 가격에 투매가 이뤄지고 있다. 현재 농협 등에서 보유하고 있는 재고량이 평년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투매는 더욱 큰 시세 하락을 조장하는 결과로 돌아오게 될 우려가 크다.

농협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기준 쌀 재고량은 66만 톤으로 전년 대비 30만 톤이나 많은 상황이다. 이를 월 소비량(판매량)을 감안해 계산하더라도 올 수확기 전까지 15만 톤 가량이 평년 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10만 톤의 3차 시장격리가 이뤄지더라도 가격 반등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농협은 이같은 재고량 증가의 원인으로 소비 감소를 꼽고 있다. 코로나19 등으로 외식 수요와 급식 등을 통한 소비가 감소하면서 지난해 수확기 정부가 예측했던 수요량에 크게 미치지 못한 소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실제 농협의 지난 5월 말 기준 쌀 판매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6%가량 감소한 53만 톤이다.

농협 관계자는 “지난해 수확기에 과잉공급 물량을 27만 톤으로 예상해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시장격리가 진행됐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외식 수요 등이 크게 줄면서 쌀 소비가 예상만큼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소비량과 재고량을 감안하면 10만 톤의 시장격리는 가격 하락세를 완화시킬 뿐”이라며 “15만 톤 이상을 추가로 시장에서 격리해야 가격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생산·수요 예측 현실성 따져 고도화 해야

일부에서는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량 예측도 보다 정교해져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생산된 쌀은 388만2000톤이다. 이는 지난해 재배면적 73만2477ha를 기준으로 10a당 생산량 530kg(현백률 92.9%)을 적용해 계산됐다. 재배면적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지만 10a당 생산량은 작황에 따라 달라진다. 통계청이 계산한 최근 10a당 생산량은 2015년 542kg, 2016년 539kg, 2017년 527kg, 2018년 524kg, 2019년 513kg, 2020년 483kg이었다.

재배면적에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곱하는 단순 계산방식인데 일부에서는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실제보다 적게 파악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해 벼 재배 농업인들은 생산량이 388만2000톤을 훨씬 상회할 것이라 주장했었다. 그 근거로 현장에서 논 한 마지기(200평) 기준 40kg 산물벼를 평년에 13가마 정도 수확하는데 흉작이었던 2020년에는 10~11가마를 생산했고, 지난해는 14~15가마가 나왔음을 들었다.

이를 도정수율 70%로 산정해 계산하면 산물벼 13가마가 생산됐을 경우 10a당 쌀 생산량은 546kg이 되고, 14가마라면 588kg이 된다. 참고로 지난해 전국 평균 도정수율은 약 71% 정도로 추산된다.

또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지난해 발행한 ‘주요 식량작물(벼) 품종해설서’에는 국내 주요 벼 품종의 쌀수량(10a당 생산량)이 나온다. 여기에서 농가 선호가 높은 삼광1호와 같은 품종을 살펴보면 도정률 74.8%, 쌀수량 562kg(2013~2015년)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일부 고품질벼를 제외한 대부분의 벼 품종의 쌀수량은 530kg을 훨씬 웃돈다.

이은만 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은 “지난해 수확기에 농업인들은 쌀 생산량이 통계청 발표보다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었다”며 “지난 1차 쌀 시장격리 때 대상이 27만 톤이었지만 신청이 40만 톤이 넘었던 것만 봐도 이미 예측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재배면적 줄이며 소비 늘릴 대안 찾아야

농업계 전문가들은 쌀 산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벼 재배면적을 줄이고, 소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쌀 소비량은 인구 감소 속에서 국민 1인당 쌀 소비량마저 지속적으로 줄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그동안 생산조정이나 논 타작물재배지원 등 벼 재배면적을 축소해 쌀 생산량을 줄이려는 정책이 추진됐음에도 불구하고 쌀 문제는 쉽게 해소되지 않았던 만큼 논에서 벼가 아닌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하고, 쌀 소비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쌀 산업의 안정화는 재배면적을 줄이는 것 외에는 근본적인 해법이 없다”며 “소비가 감소하는데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면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벼 대신 타작목으로 전환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전체 쌀 생산량의 10%면 충분한데 이는 과잉공급에 따른 시장격리 보다 적은 비용이 소요된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새정부 출범과 함께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발표한 가공전용 쌀 ‘분질미’ 활용 방안도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수입 밀가루 수요를 대체함은 물론 쌀 생산량을 줄이면서 곡물 등 식량자급률을 제고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벼농사는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 강도를 요구해 타작목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 특히 재배기술은 노동 강도를 낮추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고령농일수록 벼농사에 집중되는 경향을 나타내 쌀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 2020년 농업총조사를 살펴보면 논벼 재배농가 중 70세 이상의 경영주 비율은 46.9%로 타작목에 비해 4.8~25.3%포인트나 높았다.

이에 고령농의 은퇴를 유도하거나 대규모 대체 작목 단지를 조성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다.

김한호 서울대 농업·자원경제학 교수는 “쌀은 노동요구량이 다른 주요 품목에 비해 낮아 고령 노동에 가장 적합한 품목이 됐다”며 “노동·기술구조에서 비록 소득이 높다 하더라도 쌀이 아닌 다른 품목으로의 대체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농업 자원인 농지의 유동성 제고를 위해 은퇴, 경영이양 등을 유도하고, 대규모 대체 작목 단지를 조성해 쌀 자급률을 지켜나가면서도 쌀 중심의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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