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RPC(미곡종합처리장)의 절반 이상이 벼 저장과정에서 품종간 혼입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한다. 농촌진흥청이 국내 343개 RPC를 대상으로 `RPC별 벼 품종계약재배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나타난 것이다. 저장단계에서의 품종간 혼입은 고품질 쌀 생산에 있어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책마련이 시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조사결과 1개소를 제외한 342개소 RPC가 올해 농림부 선정 고품질 벼 품종을 농가와 계약재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쌀시장 개방확대에 맞춰 고품질 쌀 생산으로 값싼 수입쌀과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농림부 정책에 RPC들이 적극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조사대상의 57%인 196개소 RPC의 경우 벼 투입구 수를 계약품종 수 보다 적게 갖춘 것으로 나타나 벼를 수매해 저장하는 과정에서 품종간 혼입이 불가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벼를 생산하는 단계에서는 고품질 벼 품종이 재배되지만 수확후 관리과정에 고품질 쌀 생산에 역행되는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벼 품종간 혼입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품종간 일정비율의 혼합을 통해 쌀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시킬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의 경우 품종간 혼합기술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일본의 품종간 혼합은 도정후 포장단계에서 과학적으로 이뤄지는 반면 국내 RPC가 안고 있는 저장단계에서의 벼 품종간 혼입은 무계획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점에서 쌀의 품질향상과 거리가 먼 것이다. 이처럼 수확후 관리과정에서 품종간 혼입이 불가피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는 고품질 쌀 생산에 차질이 예상된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RPC의 벼 투입구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시설을 보완하던가, 아니면 벼 계약재배 품종 수를 벼 투입구 수에 맞게 줄이는 방안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소비자들의 취향과 RPC의 경영효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RPC 차원의 시급한 자구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도 뒤따라야할 것이다. 당장 올해부터 수매제가 폐지되고 공공비축제가 도입됨에 따라 벼 수확기 홍수출하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되는 RPC의 저장시설 확대과정에서 RPC의 벼 투입구 수와 계약재배 품종 수가 일치되도록 유도하는 유인책이 병행돼야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다 벼 투입구 수와 계약재배 품종 수가 같은 RPC에 수매자금 지원을 확대한다든가 하는 방안을 통해 올해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내년부터는 저장단계에서의 벼 품종간 혼입으로 고품질 쌀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태만큼은 막아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울러 차제에 벼 품종의 선택에서부터 시작해 재배기술, 수확후관리 등 고품질 쌀 생산과 관련한 전 부문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을 통해 보완책을 찾아내려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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