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나빠진 아내를 기쁘게 해주리라는 당찬 포부와 함께 평소 닦은 내 실력을 평가 받아볼 겸 지난주 추사선생 휘호대회에 참가해봤다. 결과는 참담한 낙방. 언감생심 입선을 넘보다니. 집에서 틈틈이 짬나는 대로 연마한 글씨로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나 같은 아마추어가 몇이나 끼었는지는 몰라도 대회 참가자 대부분은 나름대로 한 가닥 필력을 갖춘 경향 각지의 프로들이었다. 어차피 글렀음을 감지한 나는 일찌감치 종필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며 장을 빠져나왔다. 밖에서 지켜본 아내는 “그래도 폼은 멋있더라” 고 격려해 줘 같이 웃었다. 대상 1000만원 상금에 22년째를 맞는 이 대회는 알아주는 전국규모의 큰 서예전이라는 것도 이번 참여를 통해서야 알았다.

실력은 물론 대회정보조차 어두운 선머슴 서도(書徒)가 남이 장에 간다니 따라나서서 덤벙댄 꼴이란. 그렇다. 이제 모든 분야가 프로 아니고서는 통하지 않는다. 세계최고? 어찌 들으면 매우 식상한 말이지만 이게 아니고는 통하지 않는 시대다. 1%에 들지 않고 살아나기 힘들대서 모두가 프로가 되려고 기를 쓰며 전력투구하는 세상이다.

농사도 마찬가지다. 소 1마리에 밭농사 몇 마지기, 벼 한 20석정도 하는 경종 복합농은 흘러간 옛이야기다. 농사꾼 대열에 끼지도 못한다. 작목별 틈새시장 즉 블루오션을 찾아내고 거기서도 최고 최상의 품질을 만들어 인터넷 시장에 올릴 줄 알아야 요즈음 농사꾼 대열에 낄 수 있다. 농업의 프로화 시대가 선뜻 다가온 것이다. 언필칭 강소농(작지만 강한 농업)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게 말처럼 쉬운가. 따지고 보면 농학(農學) 그자체가 매우 포괄적이고도 전문적인데다 소비 트렌드도 주기가 짧아지고 소비자 욕구수준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 것이다.

화학비료, 농약을 이용한 관행농법 농산물이 설 자리는 이제 없다고들 한다. 웰빙이 뭔가. 무농약 친환경 완전식품을 내 놓으라는 소비자들 요구이다. 이런 소비자요구에 부응할 농업의 프로화를 이뤄주겠다는 당국의 행보를 지켜 볼 일이다. 강화 순무로 승부를 낸 신지식 농업인도 있고 단호박 한가지로 정상에 오른 스타 농부도 있다. 유기농 구기자로 억대 꿈을 이룬 농부, 명가 전통주 기법을 이어가는 장인들도 다 프로들이다.

푸짐한 식탁에서 걸판지게 먹어야 흡족해 하던 넘침의 식문화는 사라졌다. 기아 궁핍의 시대에서 포만감 만끽의 시대를 거쳐 웰빙 고품질 식단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먹는데 프로가 된 소비자들이 프로농민들이 지은 고급식단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농업의 프로화가 시급한 이유이다.

<김창동 대전충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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