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만큼 농협의 고뇌도 깊어 보인다. 코앞에 닥친 오는 18일 중앙회장 선거와 내년 3월부터의 지배구조개편이라는 역사적 대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인수위에 버금갈 인력 200명을 투입한 농협중앙회의 구조개편기획부는 연일 회의를 하고 지방 설명회를 하는 모습이 이런 고뇌의 일단으로 해석된다. 그들의 말대로 50년만의 대변혁이다. 중앙집권적 종합농협을 해체하고 신용과 경제사업을 분리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에 따른 기구, 조직 그리고 1만7000명 인력의 재배치가 불가피하다. 하기에 따라 춘삼월 따뜻한 동남풍이 불어 올 수도 있고 심하게 몰아치는 폭풍한파 개혁의 쓰나미가 덮칠 수도 있으리라.

지금 구조개편기획부 핵심 멤버들이 그려내는 밑그림이 적어도 향후 20년간의 농협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스케치가 될 수 있다. 중앙회-도-시군 3단계 구조가 어떻게 바뀔 건가. 농협 사업의 범주는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 자회사가 열 개도 될 수 있고 스무 개도 될 수 있다. 일반의 궁금증이 더 증폭된다.

농협의 사업범위는 넓고도 깊다. 예컨대 농협의 장제사업을 조금만 변형해 상조사업을 할 수도 있고 친환경 농산물 사업을 암환자 전용식단 사업으로 진출할 수 있다. 가스 장판, 보행기 같은 실버산업은 농협 코드에 딱 맞는 성장산업이기도 하다. 광천수에 보험업까지 뭐든지 할 수 있다.

모두가 민간기업과 예민하게 겹친다. 수십조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농협, 이 힘이 너무 커지는 게 싫다하여 외부 입김으로나마 힘을 빼내자고 정치권이 나서서 물리적으로 고치게 한 개정 농협법이 꼭 그들 입맛대로 가라는 법도 없어 보인다. 어차피 신검을 쥔 것은 농협 당사자들이다.

지금 농협직원들은 쥐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있다. 폭풍전야, 대변혁의 서슬 시퍼런 계엄령하의 경거망동은 있을 수 없다. 그저 조용한 변화,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지 않을 변화 속에서 최소한의 자리보전은 있어야 한다는 바람이다. 개혁요구를 충족시키고 직원들의 생각도 반영해야 하는 기획단의 부담과 깊은 고뇌가 여기에 있다.

누가 뭐래도 농협은 뿌리 깊은 나무, 고향의 느티나무다. 멀리서 봐도 언제나 정겨운 느티나무, 휴식과 안녕을 지켜 나온 어머니의 품 느티나무, 겉보기엔 큰 고목 한그루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우주요, 자연 생태계이며 그 속에 먹이 사슬과 질서가 엄존한다.

조합원은 아니지만 농협을 통해 직간접적인 경제행위를 하는 식솔들이 많다는 말이다. 다 경제 주체며 객체들이다. 지금 일하는 농협기획단은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농협은 계통 직원의 농협, 농민의 농협에 국한하지 않는다. 국민의 농협, 민족의 농협이어야 한다.
50년 만고풍상을 다 거친 뿌리 깊은 느티나무의 의연하고도 포근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김창동 대전충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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