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컬럼)심각한 검찰수사 후유증"

1999-05-25     농수축산신문
" 『협동조합에 20여년간 몸담았던 것이 이렇게 후회스러운 적은 없었습니다. 이제는 조합원들 뿐 아니라 자식들보기 조차 민망해 서로 말하기 조차 꺼리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나 심각하게 생각해 볼 참입니다.』

지난 3월 감사원 감사결과로 촉발된 농·축협사태와 관련, 얼마전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돌아온 지역농협의 한 관계자는 최근의 심경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담배연기를 깊게 내뱉었다.
이런 심경은 비단 농협만의 일이 아니다. 충남의 어느 지역축협 간부 역시 검찰 조사를 받은 직후 무혐의로 밝혀졌음에도 10여년 몸담았던 직장에 미련없이 사표를 내던졌다. 농·축협중앙회
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검찰수사 이후 한번씩 조사를 받은 간부들이 양복주머니나 책상서랍 깊숙한 곳에 사직서를 넣어두고 있는 것은 직원들간에도 이제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같이 침체된 협동조합 임직원들의 분위기는 최근 농협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최근 전국 1천2백개 회원농협 직원 가운데 명예퇴직 신청자가 1만1천명을 넘은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이는 전체 회원농협 직원수 5만1천명의 22%가 넘는 수로 당초 명퇴 예상자 7천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이다.

물론 이때가 『그나마 명예퇴직금 지급을 약속받았을 때 그만 두는게 낫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을 시기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검찰수사가 지난 지금에도 이런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모습이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한 사무소 전체가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바람에 업무마비를 우려한 나머지 오히려 명퇴를 만류하거나 명퇴후 임시직으로 재고용하는 등의 대책으로 간신히 무마하는 웃지못할 해프닝까지 연출됐다고 한다.

다행히 지난 3일 검찰은 두달여에 걸친 농·수·축·임·삼협 비리에 대한 일제수사를 마무리한다고 발표한데 이어 각 협동조합중앙회는 각종 개혁위원회 구성을 통해 새출발을 다짐하는 등 그동안의 불안감을 씻는 노력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노력에도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검찰수사에 대한 후유증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선직원들은 농민들에게 대출해 줄 때 예수금이 넉넉해도 예전보다 더 꼼꼼하게 대출규정을 따질 수 밖에 없게 됐다. 때문에 낮아진 대출금리에도 불구, 대출받으려는 농민이 줄고 있다.

예수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농·축협의 경우 썰물처럼 빠져나간 예수금이 검찰수사 종결이후 원상복구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부 조합은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근 협동조합 통폐합 논의와 맞물려 예금자들이 다른 시중은행을 찾거나 아예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는 증권투자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직원들은 『아직 검찰수사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만큼 이번 검찰수사에 대한 협동조합 임직원들의 충격이 큰데다 앞으로 있을 협동조합 개혁작업과 관련, 또 한번의 대대적인
사정이 있을 것이 아니냐는 나름대로의 분석에서 나온 생각이다.

『협동조합이 똑바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소속 임직원들이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지금 협동조합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협동조합 임직원들을 더이상 흔들어서는 안됩니다.』 퇴직한 조합 임원의 말이다. 배긍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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