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이춘지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이사
대한민국 축산과 식품업계·소비자들 위해 능력 활용하고 파
1972년 건대 축산과에 입학, 건대 축산과 최초의 여성학도 타이틀을 거머쥔 사람이 있다. 축협의 전신인 축산진흥회를 거쳐 여성개발원, 다시 축협으로 복직해 젖소개량사업소와 농협목우촌까지 대한민국의 축산 역사와 함께 젊음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춘지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이사는 대한민국 축산 역사를 함께한 여성축산인으로 유명하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에는 건대 축산과가 정말 유명했습니다. 우연히 집에 놀러 온 오빠 친구가 건대 축산과에 가면 덴마크로 유학을 보내준다고 하길래 덜컥 축산과에 응시를 했어요. 그런데 막상 축산과에 가서 공부를 하니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대학을 졸업하고 조교로 남아 공부를 이어가다가 축협의 전신인 축산진흥회가 발족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축산진흥회 홍보팀에서 월간지 만드는 일을 했어요. 당시 홍보팀에 모두 기자 출신들만 있었는데 저만 유일한 축산전공자였어요. 학교에서 일을 했으니 축산학과 교수님들과 워낙 친분이 있었고 기획기사 등을 모두 전문가들과 상의해서 더 전문적이었던 것 같아요.”
쓰는 기사마다 회자가 됐고 이 이사의 전문성에 업계는 주목하기 시작했다. 첨예한 문제들을 풀어내면서 이 이사는 축산업계가 주목하는 사람이 됐다.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이러 저러한 일로 여성개발원으로 이직을 해서 또 8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워낙 여성들의 불모지인 축산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여성개발원에서도 기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성이라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능력을 키우면 기회는 저절로 생긴다는 생각으로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이 이사가 그랬다.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능력을 발휘하며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 인정을 받으며 즐겁게 일했던 것이다.
“젖소개량사업소에서 일할 때는 개별 젖소의 정보를 농가가 직접 휴대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네덜란드에서 문의가 올 정도였습니다. 늘 그렇게 일했습니다. 우리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대한민국의 축산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도 대한민국 축산과 식품업계, 소비자들을 위해 제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