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농수축산신문-KMI 공동기획] 어촌여지도 ①프롤로그

소멸위기 어촌, 무엇이 필요한가 수산정책, 산업진흥 아닌 지역·공간·사람 중심으로 전환해야

2025-02-28     김동호 기자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어촌사회의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소멸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출산율의 심각한 하락으로 심각한 감소로 도서지역을 중심으로 초등학교가 폐교하는 사례가 늘어나며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정부는 어촌의 소멸우려에 대응하고자 어촌뉴딜300사업에 이어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과 귀어‧귀촌지원사업 등을 통해 수산업‧어촌의 활력제고를 추진하고 있다. 어촌의 활력제고와 소멸위기를 막기 위해 시행된 다양한 재정사업은 수산업계와 어촌공동체에 많은 성과와 과제를 함께 가져다줬다. 마을주민들이 지역의 자원을 적극 활용, 인구감소시대의 어촌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보여준 마을이 있었던 반면 일부 어촌에서는 정부의 재정사업이 오히려 주민 간의 갈등의 불씨를 일으키는가 하면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시설이 유휴화된 사례도 있었다. 같은 정책사업을 추진했지만 마을의 여건에 따라 성패가 갈린 셈이다. 이는 소멸위기에 놓인 어촌사회와 어촌활력제고를 위한 정부정책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인구의 감소, 어촌의 고령화와 공동화. 2025년의 대한민국 어촌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본지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함께 올 한해 동안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전국의 어촌마을을 찾아 어촌의 현황을 진단하고 지방소멸시대에 대응해 어촌사회에 나가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고령화‧인구감소에 소멸위기 직면한 어촌

어촌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소멸위기에 직면해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어가인구는 2004년 20만9855명에서 2023년 8만7115명으로 줄어 20년 사이에 58.5%가 줄었다. 어가인구의 빠른 감소속에 고령화율 역시 매우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2004년 17.05%였던 고령어가의 비율은 2023년 47.96%를 기록해 20년간 고령화율이 30.91% 포인트 높아졌다. 즉 어촌사회의 2명중 1명꼴로 65세 이상의 고령층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이같은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어가수가 3만8950호, 어가인구는 8만1336명이 될 것으로 추정되며 표본조사가 아닌 농림어업총조사가 있는 올해에는 통계상 어가인구가 7만1000명까지 줄어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인구감소에 대한 우려는 국민들의 인식과도 일치한다. KMI가 지난해 2월 전국 성인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양수산국민인식도 조사의 대내외 환경변화에 따른 해양수산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서 ‘어촌과 연안지역의 인구소멸 위기가 심각해졌다’는 평가가 72.9점을 받아 가장 높았다.

# 파격적 예산투입에도 인구감소 ‘여전’

정부는 어촌의 소멸위기에 대응하고자 어촌뉴딜300사업과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등 어촌의 재생을 위한 사업과 함께 귀어‧귀촌확대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해양수산부는 2019년 시작된 어촌뉴딜300사업에 이어 어촌신활력증진사업까지 활발하게 시행하면서 지방소멸에 대응하고 있다. 실제로 해수부는 어촌뉴딜300사업 대상지로 2019년 70개소, 2020년 120개소, 2021년 60개소, 2022년 50개소 등 총 300곳의 어촌마을에 국비 2조1037억 원, 지방비 8965억 원 등 3조3억 원을 투입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이 추진됐다.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은 어촌어항재생사업을 ‘어촌 경제플랫폼’, ‘어촌 생활플랫폼’, ‘어촌 안전인프라 개선’ 등 3가지 유형으로 나눠 각각 25개소, 175개소, 100개소를 선정해 3조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2023년에는 65개소의 사업지가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33개소, 올해에는 25개소가 선정될 예정이다.

어촌어항재생사업에만 연평균 6000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예산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촌의 과소화와 고령화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즉 과거 추진된 어촌어항재생사업과 다양한 어촌활력제고사업의 성과와 과제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 한계와 가능성 모두 보여준 어촌마을

어촌뉴딜300사업의 시행으로 본격화된 어촌어항재생사업은 어촌마을의 한계와 어촌이 나아가야할 방향과 가능성을 모두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속도감있는 정책 추진을 위해 어촌뉴딜300사업의 기간을 3년으로 정하고 신속하게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했다. 하지만 정부의 바람과 달리 어촌사회는 재생사업을 위한 준비가 된 곳이 거의 없었다. 어촌뉴딜300사업은 마을 주민들이 직접 사업에 참여해 계획을 수립하는 상향식 어촌개발을 모델로 설정했다. 하지만 어촌의 주민들은 어촌에 거주하면서도 자신들의 마을이 가진 강점과 자원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하지 못했고 어촌마을의 강점을 살려낼 사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어촌마을에서는 어촌을 재생하기 위한 사업임에도 수탁기관이 중심이 돼 획일적인 사업이 이어졌다.

특히 마을의 활성화를 위해 필수적이었던 소득사업에 대한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협동조합 등의 형태로 법인을 설립, 마을주민들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사업이 실시되길 바랐지만 어촌현장에서는 소득사업을 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시설이 만들어졌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유휴화된 시설들이다. 마을 사업 역시 창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하지만 짧은 사업기간내에 고령의 어촌주민들이 신규사업을 하기 위한 역량을 갖추기는 어려웠다. 그 결과 어촌어항재생사업으로 조성된 시설 중 상당수가 유휴시설로 남게 됐다.

반면 일부의 어촌마을에서는 정부의 어촌어항재생사업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충남 서산시에 위치한 중왕어촌계다. 중왕어촌계는 정부의 6차 산업화 지원사업을 통해 감태생산시설을 마련했고 어촌뉴딜300사업으로 마을의 인프라를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가로림수산학교를 마련, 귀어인들을 유치하기 위한 기반도 확보했고 2023년에는 귀어타운 대상마을로 선정돼 14명의 귀어인을 유치했다. 다양한 소득시설에서 발생한 수익금 중 일부는 고령어촌계원을 위한 연금사업에 활용된다.

어촌어항재생사업을 통해 마을에 귀어인을 유치하고 새로운 활력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중왕어촌계의 성공은 주민들이 마을의 소멸우려에 대한 심각성을 공유, 어촌계를 개방적으로 탈바꿈시키는 동시에 정부의 정책사업을 유치했기에 가능했다.

# 주민을 지원한 리빙랩 사업

어촌어항재생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리빙랩 사업이었다.

어촌어항재생사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사업의 수혜자인 동시에 사업을 이끌고 나가는 주체인 주민들의 역량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농어촌개발사업은 주로 농촌을 중심으로 이뤄져 어촌의 주민들은 마을사업을 위한 역량을 충분히 키우지 못했다. 주민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시행되는 정책으로는 마을의 어메니티를 발굴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과 사업계획을 수립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어촌 주민들의 역량제고를 위해 도입된 것이 리빙랩사업이었다. 정부는 300개의 어촌뉴딜300사업 대상지 중 1%에 해당하는 3개소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어촌마을에 직접 가서 주민들을 지원하는 리빙랩 사업을 실시했다. 리빙랩 사업이 어촌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사업은 아니었지만 주민 간의 갈등이나 사업계획의 수립 등이 보다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특히 리빙랩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직접 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감으로써 어촌마을에서 가장 부족한 ‘인적자원’의 문제를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 수산정책, 공간‧사람 중심으로 전환 필요

어촌소멸위기 대응과 어촌경제의 활력제고를 위해서는 수산업‧어촌 정책의 틀을 산업 중심이 아닌 어촌을 구성하는 공간과 사람을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정부의 국토관리는 도시지역의 경우 국토교통부, 비도시지역은 농림축산식품부, 유인도서는 행정안전부가 수행하며 해수부는 무인도서를 정책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해수부의 수산정책은 어선어업과 양식어업, 내수면어업 등 수산업과 전후방산업의 생산성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있고 어촌과 관련한 정책도 어항개발 등 단위사업별로 분절화된 개발정책만 이뤄져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산업‧어촌을 둘러싼 여건은 빠르게 변화했다. 수산물 생산이 중심이었던 산업구조는 이제 생산보다 가공‧유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어촌사회의 인구구조 역시 빠르게 변화하면서 수산업의 생산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연안어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역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 인식되던 연안어촌지역은 수산물 생산의 중심지였으나 점차 여가와 레저를 위한 공간으로 보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즉 산업중심의 정책이 아닌 지역과 공간, 그리고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정책들이 마련돼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박상우 KMI 어촌연구부장은 “산업구조와 인구구조, 기술발전 등 수산업‧어촌을 둘러싼 여건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수산정책은 여전히 단순히 어업진흥과 사업지역 단위의 어촌개발만 이뤄지고 있다”며 “현재 어촌이 겪고 있는 문제는 오랫동안 누적돼온 문제들이기 때문에 단순히 산업진흥이나 어업인 육성 정책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수산업 진흥을 중심으로 한 정책의 틀을 벗어나 지역과 공간,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정책으로 탈바꿈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