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KMI 공동기획] 어촌여지도 ⑨ 협력으로 비상하는 용유지역
박형준 KMI 전문연구원 을왕·마시안·덕교·남북 4개 어촌계, 협력 통해 어촌재생성과 높여 어촌뉴딜300사업 계기로 톱니바퀴같은 맞물리는 사업구조 가져 관광객 편의 위해 교통정체·주차난 극복 '과제'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인천 용유지역은 갯벌이 펼쳐진 한적한 섬 어촌이었다. 마을의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그런 마을에 1992년 신공항 건설 소식이 들려오면서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이 문을 열자 다양한 사람과 새로운 기술이 모여들었다. 공항 주변은 우리나라 대표 경제자유구역으로 자리매김했다. 공항 건설로 인해 매립과 연륙교 공사가 진행되면서 용유지역에서는 도시와의 공존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을왕‧마시안‧덕교‧남북 등 용유지역 4개 어촌계가 각 마을의 강점을 강화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어촌뉴딜300사업이다. 사업과정 중 용유지역 어촌마을은 여건에 맞는 역할을 모색했고 다가올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이 마을들은 이제 용유지역을 넘어 수도권 대표 어촌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목에 서 있다.
# 용유지역 변화의 에너지
용유지역 어촌 역시 우리나라 여느 어촌계와 마찬가지로 고령화의 숙제를 안고 있다. 고령인구가 늘어나면서 어업의 기반이 되는 시설은 설 자리를 잃어갔고 상업자본이 침투한 바닷가는 관광기능만이 가능한 공간으로 재편됐다. 용유지역은 기능 간 중첩으로 인해 어촌의 공간기능에 관한 전략과 관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용유지역 마을리더들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어촌의 새로운 역할을 꾸준히 모색했다. 마시안, 덕교, 남북 어촌계는 자율관리어업 육성사업에 선정, 5000만 원에서 1억 원 사이의 사업비를 활용해 어촌계의 실정에 맞는 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하며 어업 여건변화에 대응했다.
본격적인 변화는 어촌뉴딜300사업과 함께 시작됐다. 용유지역은 2020년과 2021년 어촌뉴딜300사업에 지원했지만 2년 연속 선정되지 못했다. 연이은 실패는 마을 간 협력을 위한 실마리를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4개 마을의 어촌계원들은 그간의 사업 추진 경험과 축적된 요구를 밑거름 삼아 4개 어촌계가 각각의 강점을 살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구조를 마련, 어촌뉴딜300사업에 응모했고 결국 사업에 선정됐다.
# 사업 효율성 높이는 마을간 협력
용유지역 4개 어촌계가 바다와 연결하는 방식은 다르다. 어선을 활용한 어업은 어항인 덕교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며 마시안어촌계와 남북어촌계에는 갯벌을 활용한 어업이 주로 형성되었다. 반면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을왕어촌계에는 지역 내의 음식점이 밀집되는 등 수산물의 소비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4개 어촌계는 마을별 특성을 바탕으로 어촌뉴딜300사업 기본계획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사업을 설계했다. 덕교항에는 부잔교 연장과 공동작업장 조성 등 어업기능 강화를 위한 정비가 집중됐고 마시안어촌계는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어촌체험휴양마을 프로그램을 이어받아 ‘마시안갯벌체험센터’를 계획했다. 또한 남북어촌계는 늘어나는 어촌체험객에 대한 안전교육을 위해 마을 내 유휴건물을 활용, ‘갯벌체험안전센터’를 조성할 예정이며 을왕어촌계에서는 소비 중심지 특성을 반영해 바다낚시와 캠핑을 위한 사업을 구상했다. 여기에 더해 용유지역의 공동 수산물 가공·판매장도 마련, 지역내에서 생산된 수산물의 판매활성화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 역량강화교육 후, 마주한 현실의 벽
용유지역 4개 어촌계는 공동 수산물 가공·판매장을 준비하기 위해 역량강화사업을 구상했다. 어촌뉴딜300사업 추진과정에서 용유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밀키트 상품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밀키트 상품을 위한 기반시설로 수산물 가공·판매장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4개 어촌계가 함께 영어조합법인을 설립, 마을간 협력구조를 한층 고도화하려 했다.
밀키트 상품 개발의 실현까지 구조적인 장벽은 여전히 남아있다. 개발 상품이 밀키트로 한정적인 경우 사계절 내내 재료를 공급해야 하는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소비자 입맛을 전방위적으로 공략하는 글로벌 대기업 밀키트 상품이 앞다퉈 시장에 진출하면 판로 개척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형식적인 교육은 역량강화의 기대치만 부풀리고 결국 마을에 실망을 남긴 채 사라진다. 유행과 외부 시선에 따라 유망 사례만 답습하면 시장에서 외면 받는다. 시장 목표를 구체화하고 마을의 자원과 주민의 역량에 맞춘 상품 발굴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은 시설 공사와 상품 개발 전략을 같이 꼼꼼히 짚어가는 일이어야 한다.
# 가시화되는 사업성과
용유지역의 어촌뉴딜300사업은 지난 3월 마시안갯벌체험센터 개소를 시작으로 사업의 성과가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2일 찾은 마시안갯벌체험센터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족단위 방문객이 이어지고 있었다.
현재 개장한 마시안갯벌체험센터는 어촌뉴딜300사업을 통해 방문객에게 체험시설을 갖춰 서비스 수준을 높였다. 마시안갯벌체험센터는 쾌적한 샤워시설과 함께 해감장을 갖춰 체험객들이 채취한 패류를 이미 해감이 된 패류와 교환해가도록 해 체험객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 체험객의 만족도는 사업 전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아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처럼 성과가 가시화될 수 있는 배경에는 어촌계의 리더에 대한 계원들의 신뢰, 계장들간의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유기적 협력이 있었다. 마을재생사업에서는 사업의 방향을 두고 마을주민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며 갈등이 격화되거나 심각할 경우 사업이 무산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용유지역 4개 어촌계의 계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함으로써 사업의 안정적인 추진을 담보할 수 있었다.
# 늘어나는 방문객…교통혼잡‧주차공간 부족은 ‘과제’
주말이 되면 갯벌체험과 석양을 감상하기 위해 용유지역을 찾는 방문객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다리가 이어지기 전 마련된 도로는 연륙 이후 늘어난 방문객을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결국 심각한 교통정체와 주차공간 부족의 문제로 이어져 이용객이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논의돼야 하는 것은 사람과 공간을 잇는 문제다. 어촌에서 발생하는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간구조의 다핵화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핵화 전략은 개별 시설의 공급이 아니라 ‘어떻게 공간을 연결하고 집중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특히 전체 지역 기능 분담과 연결성이 집중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용유지역은 수도권에 있다는 점을 감안해 4개 어촌계의 기능을 구분하면서도 이들을 용유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 전략을 돌아보고 관리해야 한다. 방문목적별 교통수단과 교통수요에 관한 교통 네트워크 구상 등을 통해 용유지역은 유기적인 공간구조로의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 마을간 협력, 지역활성화의 동력
쉼을 찾는 이에게 어촌은 신선한 풍경이 가득찬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고기를 쫓는 갈매기, 수평선을 물들이는 해변의 노을은 일상의 휴식을 제공한다. 어촌에서는 어업 활동의 시간이 함께 흐른다. 갈매기는 어획물이 선창에 가득 찬 배가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가 날아오르며 노을이 물드는 수평선은 물때에 맞춰 갯벌을 내어준다.
어촌은 도심과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 아니기에 일상 속 경제활동을 위한 곳으로 구현돼야 한다. 어촌의 잠재력이 온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시설 입지와 규모와 함께 공간을 어떻게 함께 채우고 나눌 것인가에 관한 고민과 실용적인 해법의 실행과 협력이 단계별로 진행돼야 한다.
용유지역이 이어갈 다음의 동력은 사람이 만든 공간의 연결일 것이다. 작지만 정교한 연결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큰 움직임을 만든다. 용유지역의 4개 어촌계의 다음 걸음도 공간을 연결하는 힘에서 계속될 것이다. 작은 톱니가 맞물려 커다란 바퀴를 굴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