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KMI 공동기획] 어촌여지도 ⑪가고 싶은 섬에서 살고 싶은 섬으로

이승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원 사람 떠난 섬엔 텅 빈 시설‧잊혀진 마을만 남아…섬 생활문화‧환경보전 위한 정책 절실 정책중심을 ‘섬’에서 ‘사람’으로 청년에겐 육지에 뒤처지지 않는 교육과 일자리 고령층에겐 안정적인 의료‧돌봄 서비스 제공을

2025-07-11     김동호 기자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전남 여수시에 위치한 거문도의 전경. 거문도는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수천 명에 달하던 인구가 이제 수백 명 수준까지 줄었고 이제 텅 빈 골목과 늘어나는 빈집만 남았다.

 

“뚜웅~” 뱃고동 소리가 멈춘다. 남해 먼바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 말 아침, 거문도의 오래된 하얀 등대 아래 파도는 조용히 부서진다. 고도, 동도, 서도 세 섬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거문도는 한때 아이들 웃음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우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텅 빈 골목과 늘어나는 빈집만이 남아 있다.

“사람만 돌아오면 마을도 살아날 텐데…” 70대 토박이 어촌계장의 말에는 간절함과 아쉬움이 담겨 있다. 관광객은 늘지만 정작 머무는 주민들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주민들은 ‘지속가능한 섬 발전’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 섬 지원 정책의 현주소 : 쏟아지는 예산, 남는 물음표

정부와 지자체는 섬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제4차 도서종합개발계획(2018~2027)에는 1조5000억 원이 배정됐고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등은 총 1256개 사업을 따로 추진 중이다. 특수상황지역 개발사업, 어촌뉴딜300 같은 대규모 마을사업도 이어지고 있으며 울릉도·흑산도 등 먼 섬 43곳에도 국가 차원의 법적 지원과 계획이 마련됐다. 또한 섬 정책을 위해 2022년 한국섬진흥원이 설립됐다. 그러나 현재 섬 정책은 연구와 정책 자문에 집중돼 있어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섬 전문가들은 ‘예산만으로 섬의 삶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꼬집기도 한다. 각 섬의 특성과 주민 현실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 예산 효율화, 주민 실생활 개선을 위한 통합적 접근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 인구절벽의 현장, 관광객은 오지만 주민은 떠났다

정부 정책의 핵심 목표는 섬에 사람이 계속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는 한때 수천 명에 이르던 인구가 수백 명으로 줄었고 대부분이 고령층이다. 교육과 의료 인프라 부족으로 젊은 세대는 육지로 떠나고 일부 섬은 무인도가 됐다.

그럼에도 정책은 여전히 관광에 집중돼 있다. ‘가고싶은 섬’ 사업으로 시작된 관광 정책은 최근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으로 확대됐고 거문도 역시 수려한 경관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정주 인구는 늘지 않는다. 거문도의 한 주민은 “관광객은 잠시 머물 뿐 섬 살이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한다.

관광 수익은 외부에서 유입된 자본이 가져가고 쓰레기와 환경 훼손은 주민 몫이다. 결국 ‘살고 싶은 섬’이 되지 못하면 ‘가고 싶은 섬’도 오래가지 못한다.

최근 전문가들은 ‘정주 인구’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주 인구뿐 아니라 정기 방문객과 체류형 이용자를 포함한 정책으로 이들의 소비와 활동이 지역에 기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 부처 칸막이와 정책 사각지대, 모두의 일인가 누구의 일도 아닌가

섬 정책은 부처 간 칸막이로 얽혀 있다. 유인섬은 행안부, 무인섬과 어항·수산업은 해수부, 관광·문화자원은 문화체육관광부·문화재청, 환경관리는 환경부, 농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맡는다. 이로 인해 중복사업과 사각지대가 동시에 발생한다. 정부 감사에서도 중복 지원과 사각지대 사례가 지적됐다.

이에 따라 2019년 4개 부처가 ‘섬 관광 활성화 협의회’를 구성했지만 실효성은 미미하다. 한국섬진흥원도 소규모 유인도를 포함한 ‘관리 대상 섬’ 개념을 제안했지만,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섬을 단순한 부처 사업의 하위 영역이 아닌 해양·국토 전략 거점으로 인식하고, 범정부 차원의 통합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실천적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

 

#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거문도는 섬 정책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거문도는 해수부의 ‘어촌뉴딜300사업(2021)’, 국가유산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2022)’, 문화체육관광부의 ‘K-관광 섬 육성사업(2023)’ 지정으로 집중 지원을 받고 있다. 현재 체험관광, 역사문화 콘텐츠, 편의시설 확충 등 다양한 사업이 추진 중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주민들이다. 어촌뉴딜300사업 대상지인 두 마을은 서로 소통하지 않고, 사업도 따로 추진된다. 외부인을 배제하는 폐쇄적 분위기가 강하다. 일부 주민은 우리 집에서 숙식하지 않으면 공사 차량을 막고 폐어구와 자재를 방치하며 사업을 방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오랜 폐쇄성, 가족 중심 문화에서 비롯된 외부인 불신 때문이다. 관광객은 많지만 정착하는 이는 없고, 외부인은 일종의 착취 대상으로 여겨진다.

관광 중심 정책만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주민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하며 이를 위해 교육, 의료, 주거, 돌봄 등 생활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 섬 주민을 배제한 사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거문도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 가능성과 한계의 경계에서

거문도의 속사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청년 인구 유입은 여전히 저조하고 초등학교 졸업생 수는 해마다 손에 꼽을 정도다. 일부 학생은 평일엔 섬에서 지내지만 주말이면 여객선을 타고 육지로 나간다. 교육은 섬에서 받지만 생활은 섬 밖에서 이어지는 셈이다. 생계 기반이 될 만한 일자리가 부족하고 자녀 교육과 부모 병원 진료를 위해 섬을 떠나는 사례도 많다. 관광 비수기엔 숙박업소와 식당 운영이 어렵고 빈집은 다시 늘어난다.

‘거문도를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미래 세대에 물려줄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만들자’는 지역 사회의 목소리는 개발과 보존, 관광과 정주의 균형을 강조한다. 여수시는 거문도를 보존형 경관지구로 지정해 개발을 조절하고 주민 공동체 재생 프로그램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관광 외에도 의료·복지 서비스, 노후 주택 정비, 배편 확대 같은 일상 기반을 다지는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여주는 개발’이 아니라 머물 수 있는 삶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에서 거문도는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 섬 인구 확대를 위한 또 다른 실험들

신안군은 ‘1섬 1뮤지엄’, ‘1섬 1정원’ 등 문화자원을 활용한 섬 활성화 사업으로 새로운 관계 인구를 유입하고 있다. 퍼플섬으로 유명한 반월·박지도는 교량 연결과 맞춤형 관광 콘텐츠 개발로 연간 수십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으며 일부는 장기 체류와 귀촌을 고민할 정도로 섬과 거리를 좁히고 있다.

신안군은 어촌계 연금제도 실험, 귀어희망자 맞춤 지원 등 실질적인 정주 여건 개선책도 추진 중이다. 전북도는 ‘작은 섬 공도 방지 사업’으로 인구 10명 미만의 섬에도 식수, 전력, 접안 시설을 지원해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보장하고 있다. 여수 초도는 빈집을 예술창작공간이나 체험주택으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전략을 전개 중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섬 고유의 특성과 주민 주도성을 바탕으로, 생활인구 확대와 정주인구 유지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결국 섬에 사람이 머물게 하려면 일상 기반 조성과 외지인과의 접점 확대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

# 사람을 남기는 섬 정책으로

지속가능한 섬 발전을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섬을 바라보는 정책의 중심을 ‘사람’에 두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우선 시설 중심의 개발에서 벗어나 주민의 삶을 지탱하는 기반 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 못지않게 주민이 살아갈 ‘살거리’ 마련이 중요하다. 섬 청년에게는 육지에 뒤처지지 않는 교육과 일자리를, 고령층에게는 안정적인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최근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들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정주생활비 지급과 노후주택 개량, 교통·복지·교육 인프라 확충 등을 국가 차원에서 책임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섬을 지키는 것은 해양 영토를 지키는 일이자, 균형발전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타당한 국가적 책무다.

둘째 섬마다 다른 역사와 생태, 주민 공동체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전략’과 ‘주민 주도형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일률적인 모델이 아닌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설계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거문도에서 진행된 전문가-주민 공동 워크숍처럼 지역의 목소리로부터 출발한 계획이 더 오래가고 실효성이 높다는 점은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셋째 ‘가고 싶은 섬’을 넘어 ‘살고 싶은 섬’으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섬 정책의 성공은 관광객 수가 아닌 그 섬에 사는 사람의 수로 판단해야 한다. 사람이 떠나면 남는 것은 텅 빈 시설과 잊혀진 마을일 뿐이다. 섬 고유의 생활문화와 환경을 지켜내는 방향으로 관광도 질적으로 전환돼야 한다. 섬을 알리고 방문객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섬에 살고 싶은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섬 주민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이번 정부는 농어업인에 대한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농어업인에 대한 안전망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다만 농어업인보다 앞서 섬 지역의 소멸이 더 문제인 지금 섬에 대한 소득 안정과 안전망 강화가 필요하고, 이러한 정책이 섬 주민의 인식변화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에는 400여 개 유인도가 있고 그 안에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섬마다의 상황은 다르고, 과제도 다르지만 그 공통된 출발점은 분명하다. 섬은 사람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개발이든 보존이든 결국 섬에 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눈부신 해양경관 뒤에 가려진 일상을 살피고 진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끝까지 질문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의 섬들이 머물고 싶은 공간이자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거듭나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