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L 칼럼]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에 대응해야
[농수축산신문=박유신 기자]
이달 초순만해도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폭염 피해확산 방지에 전체 행정력을 총 동원할 것을 지시할 정도로117년 만에 맞닥뜨린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채 아물기도 전에 이번에는 전례없는 극한호우로 인명·재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16일부터20일까지 쏟아진 극한호우로 지난20일 기준17명이 숨지고11명이 실종됐다. 공공시설과 사유 시설 피해 건수도 집계된 것만4000건을 넘었으며, 1만4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농업피해도 막대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자체 초동조사 자료를 기초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21일 기준 벼2만5517ha를 비롯해2만9448ha의 농작물이 침수됐으며, 농경지250ha가 유실·매몰되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상기후 현상은 해를 거듭할 수록 빈번해 지고 피해규모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4월 발표한 ‘2024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연평균 기온 역대1위 경신, 기록적인 열대야, 장마철에 집중된 호우, 11월 대설을 경험하는 등 전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역대 최고인1.55도가 상승한 기후위기를 실감했던 한 해였다. 이번 폭염에 이은 호우에서도 보듯이 상황은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매해 기상 수치가 역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상기후로 인한 국내 피해액은 얼마나 될까? 공식 통계는 없지만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2013~2023년 경제합계피해액은 피해액4조1000억 원, 복구액11조8000억 원을 합해 약15조9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최근 연도로 갈수록 증가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호우가9조9293억 원으로 전체 기후재난 피해액의60% 이상을 차지했으며, 태풍(4조8275억 원), 산불(1조1067억 원) 순으로 추정됐다. 폭염(43억 원)은 피해액은 작지만 인명피해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사회적으로 많이 거론되며 사태의 심각성을 전하는 용어 중 하나가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이다. ‘Heat(폭염)’와 ‘Inflation(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인 히트플레이션은 지구 온난화나 극심한 폭염 등 기후 변화가 식품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기후 위기가 초래하는 농산물 생산 감소와 이로 인한 식량 가격 급등이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극단적인 폭염, 가뭄, 홍수가 발생하면서 주요 농작물의 생산량이 급감하는 등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현실화 되고 있다. 이상기후는 인도, 러시아 등 주요 곡물 수출국의 공급 불안정을 초래, 식량공급망의 불확실성을 심화시키고 있고 이는 농산물 가격 상승과 함께 가공식품, 외식, 유통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에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들도 기후변화가 식량안보를 위협한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연일 전하고 있다. 여기에 저소득층 영양·건강 악화와 불안정한 물가, 국가 간 식량분쟁 가능성 심화 등에 따른 사회·정치적 리스크가 증가하면서 히트플레이션이 물가와 기후·식량위기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복합위기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히트플레이션은 일시적 수급으로 인한 단기적인 가격 충격을 넘어 기후 위기라는 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하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의 대응이 요구된다.
최근 관련된 토론회 등에서 전문가들이 제안한 농업부문의 대응방안을 대체적으로 △식량·농산물 비축 확대 △긴급 농업 재해 대응 체계 강화 △수입 곡물가 변동에 따른 가격연동 보조 시스템 정비 △기후적응형 작물 개발 △재해농업보험 강화 △피해 예측 시스템 고도화 △소농·고령농 중심의 에너지 지원과 냉방 장비 지원 △농산물 수급 예측 인공지능(AI) 기반 시스템 구축 △기후위기 연계 국가 먹거리 전략 수립 등을 꼽을 수 있다.
정부의 이상기후와 관련된 정책 방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대부분의 과제가 단기간에 성과를 도출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지자체·농업계가 함께하는 중장기 통합 로드맵을 수립해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히트플레이션은 이제 단순한 농업 문제나 일시적 물가 이슈가 아니라 국가 전략이 필요한 위험임을 다시한번 자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