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산 풀사료, 저장 방식이 경쟁력

박형수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조사료생산시스템과 연구관

2025-08-05     농수축산신문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들녘을 지나다 보면 둥글게 말아 흰 비닐로 감싼 덩어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마시멜로나 공룡알처럼 생긴 이 물체는 바로 가축의 먹이 ‘사일리지(Silage, 담근먹이)’로 우리나라 풀사료 저장 방식 중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다. 정확히는 ‘원형곤포 사일리지’로 불리며 국내 풀사료의 약 90% 이상이 이 방식으로 저장·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풀사료의 저장 방식은 단순한 포장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가축의 성장 단계나 사양 목적에 따라 저장 형태를 달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송아지나 육성우에게는 반추위 발달을 돕고 설사를 줄일 수 있는 건초가 더 적합한 경우가 많다. 즉 저장 방식은 가축의 건강과 생산성에 직결되는 사양 전략의 일부다. 

겨울철에는 풀을 재배할 수 없어서 사전에 수확해 저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풀사료 저장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풀을 건조해 수분을 20%이하로 줄여 만든 ‘건초’이고, 다른 하나는 일정 수분 상태에서 발효를 유도시키는 사일리지이다.

사일리지는 강우 등 기상 조건에 비교적 덜 민감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분 함량의 불균일, 곰팡이 발생, 무게와 부피로 인한 운반과 보관의 어려움 등 단점도 존재한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 주목받는 방식이 바로 저수분 사일리지, 즉 ‘헤일리지(Haylage)’다.

헤일리지는 풀을 수확한 뒤 바로 포장하지 않고 노지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말린 후 수분 함량이 40~50%일 때 제조하는 방식이다. 수분이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품질이 안정적이며 젖산균 등의 미생물을 첨가하면 발효가 촉진돼 저장성도 높아지고 곰팡이 발생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건초를 제조하기란 쉽지 않다. ‘해가 떠 있을 때 건초를 만들어라’는 외국 속담이 있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날씨가 바뀌는 우리 기후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말이다. 안정적인 건초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주일 이상 비가 오지 않아야 하는데 이는 수확철인 5~6월에 현실적으로 드문 일이다. 이런 이유로 매년 약 90만 톤에 달하는 건초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국립축산과학원은 기상 영향을 덜 받으면서도 안정적으로 건초를 생산할 수 있는 ‘열풍건초 생산 시스템’을 개발 현장에 보급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수확 후 일정 수분(40~50%)까지 자연 건조한 풀사료를 수거해, 열풍을 이용해 최종 수분 함량을 15% 이하로 낮추는 방식이다. 건조에 필요한 에너지 효율이 높고, 수분을 조절할 수 있어 규격화된 고품질 풀사료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 풀사료 산업은 그동안 정부의 생산 기반 확충 사업 등을 통해 재배 면적 확대와 생산성 향상 등 양적 성장을 이뤄왔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국제 사료 시장의 불안정성에 대비하려면 이제는 질적인 성장, 특히 저장 방법의 다양화와 품질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풀사료 저장 방법의 다양화는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다. 이는 곧 가축의 건강과 풀사료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며 나아가 국내 축산업의 안정성과 경쟁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전통적인 사일리지나 노지 건초는 물론, 헤일리지, 열풍건초, 조사료 펠릿 등 다양한 저장 가공 기술이 개발되고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도 국내 축산 현장에 적합한 다양한 풀사료 저장 가공 기술이 지속적으로 연구·보급돼야 하며 현장과의 밀접한 협력을 통해 실용성을 높여가는 노력들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