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L 칼럼] 원산지 표시 위반, 소비자 신뢰 갉아먹어
[농수축산신문=홍정민 기자]
휴가철은 소비자들의 외식과 축산물 소비가 급증하는 시기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이 지난달 14일부터 지난 14일까지 실시한 원산지 점검 결과 단속에서 무려 329개 업체가 원산지 표시 위반으로 적발됐다. 품목으로는 오리고기와 돼지고기, 염소고기 등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는 국민 건강과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오리고기와 염소고기 위반의 폭발적인 증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오리고기 위반은 46건에서 161건으로, 염소고기는 4건에서 42건으로 각각 급증했다.
이러한 현상은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개식용종식법’ 제정 이후 염소·오리 등 대체 보양식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둘째, 일부 업자가 이 틈을 타 소비자들의 원산지 민감도를 악용했다는 점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보양식 메뉴로 주문한 음식이 실제로는 수입산 원료로 조리된 경우 가격은 물론 안전성 측면에서도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에 적발된 사례를 보면 외국산 축산물을 국내산으로 둔갑시키는 수법이 여전히 빈번하다. 서울의 한 음식점은 중국산 오리고기를 국내산으로 속여 1100만 원 넘는 매출을 올렸고, 전북의 한 음식점은 호주산 염소고기를 국내산으로 속여 약 7300만 원의 이익을 챙겼다. 심지어 포르투갈산 돼지고기를 제주산으로, 호주산 소고기를 뉴질랜드산으로, 브라질산 닭고기를 국내산으로 각각 거짓 표시한 사례도 있었다.
축산물 원산지 표시제도의 근본 취지는 소비자에게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 이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순간,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된다.
농관원은 위반 업체 중 외국산 축산물을 국내산으로 둔갑시킨 103개 업체를 형사 입건하고 표시 자체를 누락한 226개 업체에는 74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형사처벌은 최대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 벌금, 과태료는 최대 1000만 원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단속 이후에도 유사 사례가 반복된다는 점은 제도와 처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반 가능성이 높은 품목과 유통경로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농관원이 사이버 단속반을 활용하고, 한국오리협회와 협력해 관리 사각지대를 줄인 것은 분명 긍정적 신호다.
문제는 적발 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원산지 표시 위반은 발각된 순간 이미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뒤다. 따라서 업계의 자율적 책임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유통 체계 없이는 아무리 강력한 처벌도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나아가 소비자 역시 원산지 확인을 생활화하고 의심 사례를 적극 신고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원산지 표시 단속은 행정기관의 몫이지만 시장 감시의 최종 주체는 결국 소비자다.
다가오는 추석 성수품에 대해서도 농관원이 원산지 점검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명절은 평소보다 식재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인 만큼 이번 휴가철 단속에서 드러난 허점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투명한 원산지 관리야말로 소비자 신뢰를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동시에 국내 축산업의 미래를 위한 기본 토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