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관세폭탄’ 한국 트랙터 수출산업 위기
관세‧수요둔화‧원자재 가격상승 '삼중고' 현지화로 생존 전략 모색 북미 소형 트랙터 시장 한국 제품 경쟁력 급락 우려 단기 전략은 '수익성 방어'에 초점 주요 기업들이 이미 구축한 물류 거점 최대 활용 내륙 운송 비용‧시간 줄이고 재고 회전율 높여 비용 부담 최소화 정부 관세 예외 협상‧금융 지원 절실
[농수축산신문=이남종 기자]
한국 트랙터 수출산업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지난달 7일부로 발효된 미국의 ‘상호주의 관세’ 행정명령은 한국산 제품에 일괄적으로 1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대미 수출 전선에 경고등을 켰다.
특히 미국은 섹션232(Section232) 조항을 활용해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50%로 인상하고 트랙터 부품 등 파생품목 400여 종에 확대 적용한다는 방침을 통보하고 나섰다. 따라서 트랙터에 부착돼 있는 일반 부품에 대해서는 그대로 15%를 적용하지만, 철강·알루미늄 부품에 대해서는 별개로 구분 관세 50%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트랙터의 경우 보통 철강이나 알루미늄 부품 비중이 70%라고 하면 그 70%에 대해서는 50% 관세를, 나머지 30%에 대해서는 1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2만 달러에 수출되는 트랙터 한 대에는 총 7900 달러라는 관세 폭탄을 맞게 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농기계업계는 초비상 사태에 들어갔다. 아직까지 각 모델별 트랙터에서 차지하는 철강·알루미늄의 비중을 하나하나 파악할 수도 없는 현실 적용의 문제와 더불어 자동차의 경우 섹션232 조항을 적용받지 않아 아직까지 협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농기계 시장의 핵심인 북미에서 국내 기업들은 이미 상당한 입지를 구축했다. 대동(KIOTI)은 북미 시장점유율을 8.7%까지 끌어올렸고, TYM과 LS엠트론 역시 딜러 네트워크와 현지 인프라를 확장하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그러나 이번 관세 부과는 이들의 노력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관세 폭탄은 수출 가격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을 넘어, 미국 내 딜러와 소비자에게 가격 상승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우려된다. 가격에 민감한 북미 소형 트랙터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경쟁력은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관세만이 아니다. 이미 미국 트랙터 시장은 고금리와 경기 둔화로 인해 수요가 둔화되는 추세다. 올해 1분기부터 두 자릿수 감소세를 기록한 판매량은 7월에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관세, 수요 둔화, 원자재 비용 상승이라는 삼중고가 한국 기업들을 옥죌 것이라는 것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내 기업들의 생존 전략은 ‘현지화(Localization)’로 수렴되고 있다. 관세라는 외부 변수를 기업의 전략 변수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업계에 따르면 당장 3~6개월 내에 실행 가능한 단기 전략으로 ‘수익성 방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진율이 높은 고사양 모델(캐빈 장착 모델, 자동변속 옵션 등)이나 부가 상품(로더+백호 패키지 등)의 판매 비중을 늘려 관세로 인한 손실을 흡수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대동은 워싱턴, TYM은 조지아, LS엠트론은 텍사스 등 주요 기업들이 이미 구축한 물류 거점을 최대한 활용해 내륙 운송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재고 회전율을 높여 비용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전략이다.
업계가 생각하는 진정한 해법은 관세 회피가 가능한 ‘원산지(Origin)’ 전략이다. 미국 내에서 ‘실질적 변형(substantial transformation)’을 통해 ‘한국산’이 아닌 ‘미국산’ 트랙터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내 트랙터 업체들은 LS엠트론이 텍사스에서 진행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반조립(CKD) 부품을 들여와 현지에서 최종 조립하는 공정을 심화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조달하던 부품(엔진, 변속기 등)의 공급망을 미국 내 또는 232 관세 부담이 적은 제3국으로 다변화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관세 회피를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TYM이 조지아에 부품, 사후서비스(AS), 교육 기능을 통합한 캠퍼스를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기업들은 조립 공장과 부품 허브를 이중화해 북미 내 생산·유통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는 관세 장벽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현지 소비자의 요구를 신속하게 반영하고 사후 서비스를 강화해 브랜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로 이어진다.
이러한 기업의 노력과 함께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한국농업기계학회의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상호주의 관세가 실제로는 농업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농기계에 부당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외교적 채널을 통해 관세 예외를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출보험공사 등 유관 기관을 통한 금융 지원 역시 기업들의 부담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관세폭탄은 분명 한국 트랙터 산업에 큰 위협이지만 동시에 현지화 전략을 가속화할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관세는 정책의 문제이지만 현지화는 기업의 전략이라는 점이다. 빠르고 깊게, 북미 시장의 심장부로 들어가라는 시장의 메시지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