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KMI 공동기획] ⑯ 어항 비움을 통한 어촌 공간의 경계 허물기 – 삼척시 임원항

어항정비, 낚시·어업·주민이 공존하는 어촌어항으로 관리해야 국가어항 지정 30년…어항 위상 높아졌지만 시설 노후·동선 혼잡으로 경쟁력 약화 클린국가어항사업 선정돼 4년간 150억 투입해 정비 추진 국가어항에서 통합 어촌공간으로 도약 어항 내부 개선에 집중…배후 어촌과 연계는 미흡 지속가능 발전 위해 어항·어촌의 통합·공간 관리 절실

2025-09-26     김동호 기자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어항정비는 배후 어촌마을과의 통합적 관리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진은 임원항 전경.

 

박형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전문연구원

차량 속도를 늦추자 임원항 어귀를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강원도의 우거진 산림을 끼고 달리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수평선이 펼쳐지며 어항과 어촌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을 어귀에 접어들자 빠른 속도에서는 스쳐 지나가던 어항과 어촌의 다양한 시설과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임원항은 국가어항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기능이 조화롭지 않으며 공간활용 역시 효율적으로 마련되지 못했다. 차에서 내려 가까이에서 본 임원항의 건물들은 긴 세월 속에서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임원항에서 어항과 어촌은 긴 시간동안 변화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임원항은 어항과 어촌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길을 마련해야하는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 기능적 연속성 저하로 고민하던 임원항

임원항은 과거 삼척시의 발전에서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어항이었다. 1995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면서 삼척시 남부의 대표적인 어항으로 수산물 위판 등 지역의 거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어항의 위상은 높아졌으나 최근 어항 내부을 살펴보면 그에 걸맞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모습도 나타났다. 어항의 기능을 위한 동선과 교통동선이 뒤엉키면서 비효율성이 증가하고 있다.

창고와 위판장으로 향하는 이동동선에 어항을 방문하는 낚시객이 차량으로 접근하는 동선이 겹치면서 비효율적인 어항 이용이 나타나고 있다. 임원항 동측에 낚시어선이 접안하면서 낚시객의 주차차량까지 어항과 도로를 점령하고 있다. 임원항 내 교통혼잡 발생에 있어 서로 다른 기능이 상충된 상황은 단순 불편을 넘어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차량과 보행자간의 안전사고로 이어지는 위험도 함께 커지게 마련이다.

임원항 내부에는 무질서하게 난립한 구조물과 시설물이 있고 임원항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위판시설 상부에 어업인 관련 단체 사무실이 있다. 어항을 지나면 사무실 간판이 이곳저곳에 부착돼 있었다. 사무실 건물도 가설된 형태일 뿐 아니라 사무실의 위치, 형태, 색채도 모두 제각각이다.

이와 같은 시설은 철거만으로는 기능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최근 낚시는 기술과 사회여건이 변화하면서 양적 성장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같은 점을 고려할 때 임원항의 여건과 외부적인 접근성을 고려한 재배치가 요구되고 있다. 낚시와 달리 어선어업은 여러 어구를 사용하기에 어구를 적치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며 어업인들이 함께 모여서 미래를 논의할 수 있는 시설들은 최근의 시설 복합화 흐름에 맞춰 용도간 통합이 필요하다. 이처럼 임원항이 가진 기능에 맞춰 입지의 특성을 검토하고 입지배분을 통해 어항 기능의 회복으로 이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임원항 개선의 촉매제는 ‘컨설팅’

임원항을 정비하고 기능을 개선하는 것은 단순히 항이 위치한 삼척시 뿐만 아니라 강원도도 관심이 많은 사안이다. 임원항의 시설개선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강원도는 지난 1~2월 두 차례에 걸친 컨설팅을 통해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어항여건에 맞는 클린국가어항사업을 계획했다. 어항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용가능한 자원을 폭넓게 검토하기 위해 임원항의 진입동선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건축물 철거와 기능 재배치 논리가 외부 자원을 연계할 수 있도록 강화됐다. 그 결과 임원항은 해양수산부의 ‘클린국가어항사업’에 선정됐다. 임원항은 클린국가어항사업을 통해 어항 내 산발적으로 설치돼 이용 효율성이 떨어지는 시설을 정비, 쾌적하고 편리한 어항으로 개선시키는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앞으로 4년에 걸쳐 150억 원의 국비를 투입할 예정이며 해수부에서는 어구창고를 비롯한 환경관리시설 개선을, 지자체는 배후 어촌지역 환경개선 연계사업을 담당한다.

하지만 국가·지자체·민간이 역할을 분담하는 사업구조에서도 클린국가어항사업 지침 상 어항구역 내부 시설 개선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클린국가어항사업의 지침은 어항 내부 시설 정비에만 집중돼 있어 어촌과의 연결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항은 배후 어촌과 분리될 수 없는 생활·경제 공간이다. 법·제도 차원에서 어항과 어촌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파편적 개발을 넘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

 

# 어항공간을 비운 후, 어촌공간도 비워낼 수 있을까?

임원항은 동선 충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어항 내 일부 기능의 정리와 철거를 추진한다. 항의 동쪽 편은 어선어업 등 수산업 중심의 용도를 회복하고 서편은 낚시객 중심의 공간으로 분리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이 과정에서 진입도로와 주차장 등 외부 접근체계까지 고려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어디까지나 내부 혼잡 완화와 기본적인 안전 확보에 국한될 뿐 어촌과의 공간적 연계까지 보장하는 장치는 마련되지 못했다.

향후 철거 대상인 16개 동의 건축물은 기능적 개선을 위한 조치였지만 어항·어촌의 통합적 관리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삼척시가 수립할 예정인 경관관리지침 또한 어항구역 내부에 한정돼 있으며 진입부나 주차장 등 어항의 일부 공간에서의 관리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결국 공간관리의 의미는 어촌 공간까지 확장되지 못한 채 어항 경계 내에서만 활용되고 있다.

더욱이 현재 원덕읍에서 추진 중인 일반농산어촌 지역역량강화사업은 주민 참여와 공동체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공간관리를 위한 제도적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즉 어항을 비우는 경험은 있었지만 이를 어촌 공간 관리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해 지자체에는 권한과 역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임원항의 사례는 어항을 비우면서 기능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어항의 배후에 있는 어촌마을의 공간을 함께 비워내고 관리하는 통합적 접근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현실도 드러났다. 결국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어항과 어촌이 따로 관리되며 공간 경계의 파편적 관리는 다른 어항에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 어항과 어촌을 연계하는 공간관리

임원항은 마을의 핵심적인 인프라인 어항과 어촌이 연계된 관리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부분의 어촌마을에서는 어항을 중심으로 어업인들이 생활하는 터전이 형성된다. 즉 어항과 어촌은 개별적인 시설확충만으로는 변화하는 사회와 기술 등 여건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어촌과 어항이 개별적으로 관리되는 공간을 넘어 함께 발전을 도모하는 공동의 무대가 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촌과 어항을 연계해 관리한다면 어촌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어항과 어촌의 개발을 파편화하기보다 동질성을 지닌 부지를 집약적으로 활용한다면 공간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상호 보완적인 발전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사회의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를 통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

지자체가 단발적인 사업을 넘어 연속성과 체계성을 갖춘 계획을 수립한다면 어항과 어촌을 하나의 연속된 공간으로 관리할 수 있으며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 지역별 발전전략을 어항과 어촌의 여건을 고려해 수립하면 용도 배치에서도 주변과의 적절한 혼합을 유도해 더욱 쾌적하고 조화로운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지자제의 재정 측면에서도 장기적인 전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해수부가 아닌 다른 부처의 사업까지 연계할 수 있는 만큼 발전축과 공간관리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어항의 성능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 전체의 활력을 높이는 기회가 된다. 점적으로 산재한 시설을 정리하고 어항 기능이 연중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토지를 관리하는 과정은 주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발판이 된다. 또한 새벽부터 움직이는 어업인과 방문객 모두에게 필요한 규모와 시설을 세심하게 계획한다면 짜임새 있는 공간 구성이 가능하다. 임원항의 미래 역시 어항공간의 비움을 통해 어업인, 주민, 방문객에게 열린 따뜻한 어촌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바다에서 바라본 어촌은 더 이상 고립된 등대와 작은 마을의 풍경이 아니다. 어촌과 어항이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로 자리 잡으며 일상의 안녕과 공동체의 연대를 담아내는 따뜻한 공간으로 발전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