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피지컬 인공지능 시대, 축산·방역 혁신의 기회

강민 전북대 교수

2025-11-18     농수축산신문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축산·방역 분야 AI로봇 혁신 성과 위해 산업 생태계 전반 기반 구축 필요

시장 활성화·비즈니스 모델 창출 동반 

산업계·정부·학계 공동 생태계 구축해야

지난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 CEO 써밋 2025’에는 엔비디아(NVIDIA)의 젠슨 황(Jensen Huang) CEO를 비롯한 글로벌 기술 기업 리더들이 참석해 인공지능(AI)과 산업 전환의 방향을 논의했다. 한국 정부와 주요 기업들도 이 자리에서 AI 인프라 확대와 산업별 적용 전략을 제시하며 제조업과 로봇 등 ‘피지컬 AI(Physical AI)’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공식화했다.

특히 엔비디아는 한국 내 주요 기업들과 협력해 약 26만 개의 GPU를 공급하고, AI 팩토리와 로봇 응용 생태계 구축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기술 산업의 진보를 넘어, 데이터와 로봇이 실제 산업 현장을 혁신하는 ‘피지컬 AI 시대’의 서막임을 알린다.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축산·방역 분야 역시 기술 혁신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지금까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인식되던 축산업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을 통해 정밀사육·무인방역·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해나가고 있다.

국내 축산업은 고령화, 노동력 부족, 외국인 근로자 의존 심화, 그리고 동물질병 리스크 증가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은 단순한 효율 향상을 넘어 현장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핵심 수단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AI 기반의 정밀사육 기술은 비접촉 개체 체중 측정, 출하일령 예측, 사료 교체 시점 판단 등을 지원해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을 이끈다. 또한 드론이나 로봇이 축사 내외 방역, 소독, 폐사체 수거, 샘플 채취·현장 검사를 24시간 수행하면서 노동력 문제와 질병 감염 위험을 동시에 줄인다. 아울러 농장 출입 차량·사람·물품을 자동 인식하고 검역하는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으며, 질병 조기 감지 기술도 점차 현장에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결국 ‘데이터 수집 – 인공지능 판단 – 신속 행동’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한다. 사육 환경에서 수집된 데이터가 AI 분석을 거쳐 즉각적인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생산성뿐 아니라 방역의 완벽성까지 향상된다.

그러나 기술 도입이 모든 분야에서 균일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축산·방역 분야는 그 특성상 몇 가지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 첫째, 환경의 비표준화이다. 작물 재배 산업과 달리 축산업은 실외에서 움직이는 동물을 대상으로 하고 개체 단위 차이가 크기 때문에 데이터 표준화가 어렵다.

둘째, 양질의 데이터 부족이다. 개체 행동, 체중, 생리 정보 등을 장기간 정밀하게 축적한 사례가 아직 많지 않다. 이는 AI 모델 정확도를 제한하고 기술의 신뢰도를 낮추는 요인이 된다.

셋째, 초기 비용과 운영 리스크이다. 센서 설치, 로봇 시스템 도입에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고,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경우 농가의 부담이 크다.

  넷째, 시장 형성의 불확실성이다. 관련 시장이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거나, 확대 속도가 더딘 점도 기술 확산을 어렵게 한다.

마지막으로 제도와 표준화의 미비도 큰 걸림돌이다. 데이터 활용과 공유, 로봇 운용 안전, 동물복지 기준 등에 대한 정책적 기반이 아직 부족하다. 이로 인해 기술 실증 및 상용화가 느리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 축산·방역 분야가 AI와 로봇 혁신의 성과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반의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데이터 인프라가 핵심이다. 농장 단위에서 생성되는 각종 환경 센서 데이터, 사양 데이터, 질병 모니터링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표준화해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특히 초기 AI 개발 단계에서는 데이터의 양적인 부분 뿐 아니라 질적으로 우수한 데이터의 확보가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자거나 편하게 쉬는 개체를 아픈 개체와 구분하기 위해서는 질병에 감염되어 이상증상을 보이는 개체의 행동, 소리, 체온의 변화 양상에 대한 데이터가 학습돼야 한다.

또한 시장 활성화와 비즈니스 모델 창출이 동반되어야 한다. 농가가 초기 부담 없이 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구독형 서비스나 데이터 분석 지원 모델을 도입하는 것도 대안이다. 특히 방역효과가 입증된다면 방역지원사업의 일부로 또는 시설현대화 사업의 개념을 확장할 필요도 있겠다. 축산업에서 관련 시장이 다른 제조업이나 생활 밀착형 산업에 비해 작을 수 있기 때문에 초기 생태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동력 공급이 필수다.

같은 맥락에서 현장 전문가와 AI 기술자의 협업 체계가 중요하다. 수의사·축산전문가·AI와 로봇 엔지니어가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만드는 융합적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

우리는 지금 피지컬 AI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 서 있다. 데이터와 로봇이 결합된 AI 기술은 제조업을 넘어 이제 축산과 방역 현장까지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 혁신이 지속가능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산업계·정부·학계의 공동 생태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반자다. 지금이야말로 산업계 관계자들이 AI 혁신을 현장 기술로 바꾸는 주체로 나서야 할 때다. 축산·방역 분야가 이 변화의 중심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