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지나가는 소나기 아니다.
2008-12-10 길경민
정 전 회장이 세종증권 인수 및 휴켐스 매각 등을 둘러싸고 막대한 검은 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일자 농업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나서 농협의 비리게이트에 무차별 비난을 퍼붓고 있다.
농협 내부도 예외는 아니다. 정 전회장의 비리가 농협 전체로 확산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안타깝다는 입장이나 ‘해도, 해도 너무 했다’는 반응과 이 같은 반응은 다시 정 전 회장에 대한 원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 전 회장의 비리게이트가 그만큼 농업계와 농협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이 기회에 비리게이트의 고리를 끊을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한 몫을 한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가락시장 발언은 농협개혁에 속도감을 더해주기에 충분했다. 지난 4일 가락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협이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정치권에만 기웃 거린다”는 이 대통령의 말이 전해지자 농림수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농협중앙회는 비상경영회의, 대책회의, 자회사 사장단 회의 등을 잇달아 열고 고강도 대책을 쏟아내고 있으며, 농식품부 역시 농협개혁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근본적인 농협개혁에 착수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일주일도 채 안된 기간 동안 정부와 농협중앙회가 보인 행태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다. 물론 문제점에 대한 해결이 아닌 해결을 위한 대책수준이어서 결과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농식품부와 농협중앙회의 행보는 일단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발상이라는 게 농업계 주변의 지적도 있다.
농협중앙회가 회의 한 번씩 할 때마다 내놓는 대책들은 그동안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인데다가 자본금 확충방안도 없이 사업부문별로 지주회사를 설립해 신·경을 분리한다는 것은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역시 농협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농협개혁위원회를 발족했으나 위원회의 역할을 연구보다는 선택에 두고 있어 자칫 ‘해야 할 것 보다는 하고 싶은 것’에 무게를 둘 공산이 크고, 그렇게 되면 농협의 자율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가 좋기는 하다. 개인차원이든, 조직차원이든 농협을 둘러싼 개혁의 목소리가 범정부, 범국민적으로 확산돼 농민조합원을 위한 농협을 만들고, 나아가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보여주기 식’의 대책과 ‘결과를 이미 세워둔 논의’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농식품부와 농협중앙회는 이번에야 말로 마지막으로 농협법을 개정하고, 제대로 된 농협상을 세운다는 각오로 이번 사태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길경민 농수산식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