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물·피해립 혼입 등 허술한 품질과 위생 관리 등 민원 늘어…제도 정비 시급
샘플검사에 책임공방만 이어져
소비자 눈높이 맞는 인식제고 필요
쌀가공식품업계가 정부양곡 인도받아
도정공장과 직접 계약 체결해 품질 제고해야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쌀가공식품 수출액이 지난해 2억 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물이나 피해립·착색립 혼입 등 정부양곡의 허술한 품질·위생 관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쌀 소비를 확대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케이-푸드(K-Food)의 대표주자로서 쌀가공식품의 선전이 지속되기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 수출 느는 동안 원료곡 품질 민원도 40% 이상 늘어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농식품 수출액은 91억627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가량 증가했다. 이중 쌀가공식품 수출액은 2억1630만 달러로 전년 1억8180만 달러보다 18.9%나 신장했다. 특히 냉동김밥, 가공밥 등의 인기에 힘입어 쌀가공식품 수출액이 전년 대비 32.7%나 늘어난 미국시장은 한류 콘텐츠와 연계한 광고·온라인 마케팅, 현지화 상품 개발, 글루텐프리·간편식 수요 증가 등이 주요한 성공 요인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쌀가공식품 수출 증가세와 함께 정부양곡 가공용쌀 품질 관련 민원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쌀가공식품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 60건 내외이던 정부양곡 가공용쌀 품질 민원은 지난해 87건으로 40% 이상 늘었다. 특히 식품산업의 원료임에도 불구하고 비닐, 실, 플라스틱 조각, 고무, 금속조각, 나뭇가지, 실리콘 등 이물 관련 민원은 2021년 22건에서 2022년 28건, 지난해 30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 민원 제기해도 입장 차 따른 책임공방만
이렇게 민원이 제기되더라도 해결은 쉽지 않다. 민원은 주로 한국쌀가공식품협회 가공용쌀 품질관리센터나 복지용 쌀 민원 처리 전담기관인 대한곡물협회를 통해 접수된다. 이들 협회는 품질(품위)검사를 진행하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현장조사를 진행하는 등 원인 파악에 나서지만 민원을 제기한 쌀가공식품업체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품질검사 자체가 전수조사가 아니라 샘플검사이며 정부양곡 창고, 정부양곡 도정공장, 쌀가공식품업체 중 어느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명확한 규명이 어려워 책임공방으로 이어지기 일쑤기 때문이다. 게다가 품질문제 발생에 따른 공급자(도정공장) 처분 기준도 있어 입장 차를 좁히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재갑 곡물협회 상무는 “민원이 발생하면 쌀가공식품협회와 연결된 시스템에 의해 전자적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현장조사도 진행해 (도정공장이) 잘못했을 때는 지자체와 협의해 교환해줄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며 “정부양곡은 공공비축을 한 묵은 쌀로 특등급과 1등급은 복지용으로 나가고 잔량인 2~3등급이 가공용으로 나가는데 농관원에서 대표성 있는 방법으로 표본을 추출해 검사를 하고 합격품에 한해서만 공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상무는 “아무래도 가공용쌀은 구곡에 등급도 낮아 같은 기계로 도정을 해도 품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규격과 소비자(쌀가공식품업체)의 눈높이 차이 때문에 민원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안용철 농관원 품질검사과 주무관은 “정곡(품위)검사가 샘플검사지만 이물이나 위해물질에 대한 기준이 있고 특히 돌이나 플라스틱, 유리, 쇠조각 같은 경우에는 시료 1kg씩 3회 반복해서 검출되지 않아야 적합 판정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최근에는 도정공장 등급제를 통해 시설 등에 대한 기준도 강화되고 있다”며 “도정공장 시설 노후화나 저온창고가 없는 창고의 보관 문제, 가공공정상의 문제 등 다양한 개연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소비자 눈높이 맞추려 쌀가공업체 스스로 시설 투자
상황이 이렇다보니 쌀가공식품업체들은 수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 별도의 시설이나 (선별)공정을 추가하면서 스스로 검수나 선별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연구개발(R&D) 등에 투자돼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대신 고정투자나 유지·관리비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물 때문에 납품처에 2억 원 가까이를 배상한 적이 있다는 충남 소재 A 쌀가공식품업체는 이후 진동채를 설치하고 라인을 교체하는 등 1억 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해야 했다고 한다.
A 업체 관계자는 “정부양곡 가공용쌀에서 쥐똥 등이 나오는 것은 예사고 플라스틱, 포대 끈 등 이물이 나왔다”며 “교환과 재발 방지만을 요구했을 뿐인데 오히려 ‘너희가 넣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납품처에서는 문제를 제기하면 우리가 책임을 지는데 우리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창고나 도정공장에서 제대로 관리를 안 하니 결국 스스로 시설 투자를 하고 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떡을 생산하는 경기도 소재 B 쌀가공식품업체도 지난해 저품질 정부양곡 탓에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정부양곡 가공용쌀을 사용해 만든 떡 제품에서 곰팡이처럼 보이는 검은 점이 발견돼 큰 거래처와의 계약이 종료됐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A 업체는 선별기 센서를 교체하는 등 많은 시설투자를 했다. 총 6단계 선별과정의 품질관리를 실시하며 원재료 검수를 위한 고정인력도 별도로 운용하고 있다.
B 업체 관계자는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 쌀을 사용하면 그냥 씻기만 해서 써도 될 정도인데 반해 정부양곡 가공용쌀은 1톤이면 부적합 원재료가 10~20kg이 나오다 지난해에는 60~80kg이나 나왔다”며 “이렇다 보니 결국 쌀가공식품업체가 스스로 공정을 더하거나 별도의 검수 인력을 둬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소비자는 위생을 넘어 안심·안전 먹거리를 찾고 있고 쌀가공식품업체도 이에 맞춰 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을 갖추고 품질 기준을 강화해 나가는데 원료인 정부양곡 관리는 1980년대 수준”이라며 “소비자의 먹거리 눈높이에 맞춰 인식을 개선하고 보다 철저한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단체 역시 가정간편식(HMR), 글루텐프리 등을 중심으로 쌀가공식품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늘어가고 있는 만큼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게 원료부터 철저한 품질과 위생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화 소비자공익네트워크 회장은 “먹거리는 원료부터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전과정이 위생적으로 안전하게 관리돼야 한다”며 “건강하고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라는 인식이 강해 인기를 얻고 있는 쌀가공식품 역시 도정공장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철저한 위생·안전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모니터링을 하고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 관리자 인식 제고 강조·당사자 직접거래 대안으로 제시
농식품부 역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정부양곡 품질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양곡 도정공장을 S·A·B등급으로 나눠 관리하는 등급제를 도입, 시설이 우수한 도정공장을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시설이 우수한 S등급에는 추가물량을 배정하고 있으며 시설이 낙후된 B등급은 오는 4월부터 자격이 취소될 예정이다.
S등급 도정공장을 운영 중인 신영주 (주)남부통합공장 대표는 “전국적 정부양곡 도정공장 가운데 30%가량이 S등급인데 시설과 쌀이 잘 나오는 것은 크게 상관이 없다”며 “석발기, 색채선별기, 금속탐지기 등 어지간한 시설을 의무적으로 다 갖추고 농산물우수관리시설(GAP) 지정을 받았더라도 관리자의 생각이 1900년대에 머물러 있으면 민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 대표는 “도정공장의 가동률 등을 감안해 통합을 유도하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부여하면서 사업장 시설뿐만 아니라 전근대적인 관리자와 직원의 인식부터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쌀가공식품협회에서는 정부양곡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쌀가공식품업계가 정부양곡을 인도받아 도정공장과 직접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품질을 제고하고 민원 발생 시 당사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상현 쌀가공식품협회 원료사업부장은 “과거 도정공장 선택제를 실시했지만 실패했고 도정공장 등급제도 품질 민원을 등급별로 분석했을 때 유의미한 차이는 발견하기 어려웠다”며 “직접 계약 방식에 대해 일부에서는 부정유출 등의 우려를 전하는데 2006년부터 가공용쌀 공급관리시스템이 구축돼 구매내역, 사용내역은 물론 제품 생산내역까지 시스템 안에서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쌀로 좋은 쌀가공제품을 만들어 관련 업계 모두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상문 농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최근 정부양곡 가공용쌀 관련 민원이 늘어 쌀가공식품협회, 곡물협회, 도정공장 등과 접점을 찾기 위해 얘기를 듣고 있다”며 “협회들의 주장 외에도 등급제를 통한 시설관리 강화, 탄력적 도정수율 운영 등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면서 고객 민원을 최대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