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 예방위한 설비 개발·보급 등 중대재해 저감 위한 대응체계 개선 필요
봄 어기 들어 어선사고로 9명 사망·12명 실종
어업안전해재와 관련된 통계 정비
사고사례분석 통해 예방대책 수립해야

이달 들어 어선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는 등 중대재해가 연이어 발생, 수산업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위한 결의대회 모습.
이달 들어 어선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는 등 중대재해가 연이어 발생, 수산업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위한 결의대회 모습.

 

3월 들어 어선어업에서 인명사고가 이어지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수산업은 타 산업에 비해 재해율이 매우 높은 업종 중 하나로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0~2022년 3년간 345명이 사망, 중대재해의 발생 건수도 매우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수산업계의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의 논의 단계부터 어업분야의 재해저감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한다고 입을 모아왔다.

최근 발생한 어선어업분야의 인명사고와 이에 따른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문제에 대해 짚어본다.

# 봄 어기 들어서자 이어진 중대재해

봄 어기에 들어서면서 어선어업분야에서는 중대재해가 빈발하고 있다. 현행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중대재해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를 의미하고 이중 중대산업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사고 등을 의미한다.

지난 1일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서쪽 해상에서 33톤급 근해연승어선이 전복,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으며 지난 9일에는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해상에서 20톤급 근해연승어선이 전복돼 선장을 비롯한 선원 4명이 사망하고 5명은 실종됐다. 또한 지난 14일에는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해상에서 139톤급 대형쌍끌이저인망어선이 침몰,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3월 들어 인명사고가 이어지면서 이들 어선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1년 이상 징역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사고가 발생한 어선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경우 해당 선주들은 파산의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 6조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피고용인의 안전·보건을 확보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 경우 징역형과 벌금형을 병과할 수 있다. 아울러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손해액의 5배 범위 이내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마련하고 있다.

즉 중대재해가 발생한 어선주에게는 매우 강력한 처벌 규정들이 마련돼 있어 처벌수위에 따라 어업인은 형사 처벌로 인해 파산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 수협, 늑장 대응하더니 공허한 적용 유예요구만

어선어업에서 중대재해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수협중앙회의 늑장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22년 1월 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됐다. 이어 지난 1월 27일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해 적용되고 있다. 즉 법률안에 통과되고 3년의 시간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수협중앙회는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도 사전 준비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수협은 2022년까지 제대로 대응하지 않다가 지난해 2월 들어서야 해양수산부의 ‘연근해어업 중대재해 예방체계 구축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연근해어선의 안전·보건 표준 매뉴얼 제작에 착수했다. 지난해 제작에 들어간 안전·보건 표준 매뉴얼은 지난해 8월 말에야 제작을 마쳤으며 지난해 9월부터 일선 수협 등으로 배포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시행을 불과 5개월 앞둔 상황에서야 매뉴얼이 배포된 것이다.

수협중앙회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수협중앙회는 2020년 11월 구성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어선원고용노동환경개선위원회에 경영계 위원으로 참여, 어선어업분야 안전재해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늑장 대응한 수협은 이제 법률의 적용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수협중앙회는 지난 14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중소기업단체협의회, 중소건설단체 등과 공동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위한 결의대회에 나섰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유예하는 법률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무산된 상황에서 재차 법률의 적용유예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수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고 수협중앙회에서는 법률에 대비하기보다는 유예기간을 늘리는데 주력했던 것 같다”며 “법률 시행에 앞서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어업인들에게 확산시키는데 주력했다면 지금과 같은 혼선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대비 안된 어업인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미 확대시행되고 있지만 어업인의 대다수가 여전히 대비가 부족한 상황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발생시 무조건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의 중대재해예방을 위한 의무 이행여부에 따라 법 적용여부가 결정된다. 실제로 2022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은 대형선망업계에서는 법률 시행 이후 2건의 사망사고가 있었으나 안전·보건관리의무를 모두 이행한 것으로 평가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이는 대형선망수협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근해어업에서는 최초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는 업종이었기에 대형선망수협은 법률 통과 이후 노무법인과 계약을 체결, 안전·보건 매뉴얼을 제작하고 매달 조합원 선사의 관계자와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안전·보건 체계를 새로 확립했다. 뿐만 아니라 안전·보건과 관련한 스티커를 대량으로 제작·배포하고 선원들을 대상으로 안전·보건 교육도 꾸준히 실시했다.

반면 지난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게 된 소규모 연근해어업은 경우 준비가 부족한 실정이다. 수협중앙회가 지난해 제작한 표준매뉴얼은 업종에 따라 150~200쪽 분량이다. 매뉴얼에는 안전·보건 경영방침 수립부터 위험성 평가, 관련 예산의 편성과 집행, 점검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있다. 모두 기록관리가 필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수협중앙회는 지난해 9월 매뉴얼을 배포한 이후 지난해 연말까지 68개 조합 1900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하는데 그쳤다. 5인 이상 50인 미만이 승선하는 어선이 2021년 12월 기준 4979척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 중대재해 저감 위한 대응체계 개선해야

어업인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중대재해 저감을 위한 대응체계를 개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선 어업안전재해와 관련한 통계를 정비하고 사고사례분석을 통한 안전사고 예방대책을 수립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해양사고통계에 따르면 어선의 사고로 발생한 사망·실종자수는 2020년 99명, 2021년 89명, 2022년 83명이다. 하지만 국가통계포털에서는 ‘어업인 및 어업근로자’의 사망자수는 2020년 114명, 2021년 129명, 2022년 102명이며 수협중앙회의 어선원재해보험금 지급건수를 보면 2020년 136건, 2021년 128건, 2022년 110건으로 모두 제각각이었다. 뿐만 아니라 어업분야의 재해율은 기관마다 모두 다른 수치를 제시하고 있어 혼선을 빚고 있는 실정인데다 사고사례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한 사고저감대책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재해저감을 위한 연구개발 역시 확대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의 경우 양망기 사고나 끼임사고 등의 발생시 설비의 가동을 즉각 중단할 수 있는 장치가 적용되고 있으며 어선원들의 추락방지벨트 착용 등도 의무화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연구개발을 통해 어선에서의 안전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설비를 개발·보급해야한다는 것이다.

수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최근 어가인구가 급감하면서 청년들의 수산업 진출을 독려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청년들에게 매년 100명 가량이 사망하는 산업으로 진출하라고 말할 수 있나”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3년이 지났는데 수산업계에서는 중대재해의 저감을 위한 노력도 충분히 하지 않은채 그저 법률의 적용을 유예시켜달라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육상에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사고사례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예방책을 수립하고 있는 것처럼 수산분야에서도 사례분석을 통해 보다 체계적인 안전재해저감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며 “더불어 수산분야의 안전관련 기자재는 민간기업이 자율적으로 생산·공급할만큼 큰 시장이 아닌 만큼 정부가 관련 연구개발과 보급사업을 통해 이를 보급하는 등 해수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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