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AI가 인공지능과 조류인플루엔자를 수시로 오가고 있다. 전자는 Artificial Intelligence(AI)이고, 후자는 Avian Influenza(AI)이다. 사용상의 혼란이 있지만 재미있기도 하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바둑 천재 이세돌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과 기술 개발에 대해서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지만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해서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비전문가 중 상당수는 조류인플루엔자 AI를 A원이라고도 잘못 말하기도 한다. 아이(I)가 일(1, one)자로 보였나 보다. AI 바이러스 종류가 하나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AI 방역이 식은 죽 먹기까지는 아니어도 일도 아니게 쉬워질 것이다.

지난번 천신만고 끝에 소멸단계에 접어들었던 H5N8 AI가 지난달 2일 군산 오골계 농가로부터 다시 확산됐다는 소식을 듣고 방역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해 가슴이 철렁했다. 오골계와 토종닭농장은 전통시장과 함께 엮여져 있고, 닭을 공급하는 중간상인에 의해 하루만에 전국적으로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시장에서의 AI 발생이 초기단계에서 통제되지 않으면 중간 유통단계 없이 소비자와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요소가 강하다. 당연히 토착화된 게 아니냐는 물음이 많았다.

국내에는 총 6차례의 고병원성 AI 유입이 있었지만 매번 다른 종류의 AI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또한 발생양상에서도 차이가 있었는데 2008년 H5N1은 전통시장과 중간상인을 위주로 퍼졌고, 2010년은 또 다른 종류의 H5N1이 들어와 철새에서의 광범위한 감염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2014~2016년에는 H5N8에 의해 유례없이 2년 3개월간 지속됐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토착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다행히 당시 검역본부 AI 역학조사위원회 검토에서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는 한 토착화로 볼 수 없다고 결론이 났다.

이번 AI는 전술한 모든 양상이 한꺼번에 겹쳐서 나타난 모양새다. 철새의 광범위한 H5N6 바이러스 감염, 전통시장 소규모 거래를 통한 H5N8 AI의 동시다발적 발생 등이 그것이다. 병원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서 발생 신고율이 낮은 H5N8 바이러스에다 살처분과 사후관리 등 현장방역의 부실 문제까지 겹쳤으니 피해규모가 역대 최고로 나타날 악조건을 다 갖춘 셈이다.  

이번 군산발 H5N8의 경우 만약 제주 발생농가에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신고를 계기로 18일만에 36건의 발생건수를 찾아내어 처리하지 않았다면 전국이 AI로 다시 초토화됐을 것이라고 상상하니 아찔하다. 관련농가와 오리농가를 샅샅이 검사했지만 더 이상 양성인 개체가 발견되지 않아 더욱 다행이다. 아마도 어디선가 잔존하던 바이러스가 드러났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지금도 방역당국의 감시망 밖에서 추가 발생이 일어나고 있을 위험성이 있다. 방심은 금물이다. 오리농가를 중심으로 예찰과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하며, 자칫 종식선언을 서두르면 자충수가 될 위험성이 높다.

고병원성 AI 토착화는 외부로부터 새로운 유입이 없이도 동일한 종류의 AI 바이러스에 의해 가금류에 어디서든 연중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이나 베트남 등의 동남아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놓친 불씨 때문에 제한적으로 AI가 발생한 상황에서 그 바이러스가 H5N8이라고, 2014년 발생의 연장선상에 있는 토착화라고 주장한다면 설득력이 없다. 2014년과 2017년의 H5N8은 이름은 같지만 유전자형이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토착화에 의한 발생이 아니라 새로운 유입에 의한 발생으로 결론이 났다. 토착화라는 말을 통해 백신접종 외는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려는 의도가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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