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 한국원예학회장(중앙대 교수)

에틸렌은 식물에서 생산되는 천연 호르몬으로써 사과, 바나나, 토마토와 같은 과실이 익을 때 다량 발생한다. 밀감, 포도, 딸기 등의 과실에서는 익는 동안에도 매우 적은 량이 발생된다. 에틸렌 가스는 이동이 쉬우며, 과실의 노화를 촉진시키거나 저장수명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식물조직에 상처나 멍이 들어도 이 조직에서는 에틸렌이 발생한다. 토마토나 사과를 수확할 때 가위로 꼭지를 짧게 자르면 그 곳에서 에틸렌이 발생한다. 에틸렌은 합성이 용이해 액상이나 가스상태로 청과물 품질관리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올해 들어 관세가 없어진 수입오렌지는 요즘 마트에서 잘 팔리면서 수입량도 대폭 늘고 있다. 수입오렌지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주가 주산지이다. 중부 캘리포니아 지역은 강우량은 적고 겨울에도 춥지 않아 물만 있으면 오렌지와 포도 등 과수 농사에 매우 적합하다. 이곳에서는 오렌지 과실의 당도가 일정수준에 도달하면 착색정도를 불문하고 모두 수확하여 선별장으로 가져온다. 패킹하우스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오렌지는 시장으로 출하하기 전에 에틸렌가스가 살포돼 표면의 색상을 오렌지색으로 발현되도록 유도, 상품성을 높인다. 섭씨 약 20도, 습도는 약 90%를 유지하여 3일 만에 과실표면이 오렌지색으로 균일하게 착색된다. 그 다음으로는 세척하는 과정이다. 세척과 동시에 표면의 곰팡이나 박테리아 등을 살균하기 위해 차아염소산 등의 약제가 녹아 있는 수조에 담그고 세척한다. 세척된 오렌지 과실은 컨베이어를 타고 이송되면서 표면의 수분을 말리기 위해 선풍기 바람을 쐬고, 이어서 표면에 왁스 코팅제가 분무된다. 이 왁스 코팅은 과실로부터 수분의 증발을 억제해 시들지 않게 하고, 살균제가 첨가돼 있어 장기간 저장이나 운송에도 부패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코팅된 과실은 열풍으로 표면을 건조시키고 크기에 따라 선별, 박스에 담겨진다.

캘리포니아 오렌지는 이 과정을 거쳐 해상 컨테이너에 실려 배를 타고 약 3주 동안 태평양을 건너서 우리나라에 도착한다. 시중의 마트에서 판매되는 오렌지의 색상은 예외없이 에틸렌에 의해 착색이 향상된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한때 덜 익은 녹색 밀감을 수확해 에틸렌을 처리하고 시장으로 출하돼 맛없는 밀감이 유통, 소비자의 불만을 초래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에틸렌으로 후숙시킨 밀감은 제주도 조례에 의해 시장으로 출하가 금지돼 있다. 시중의 바나나는 90% 이상이 필리핀에서 수입되고 있다. 현지농장에서는 녹색 바나나를 수확하고, 과실표면을 소독한 다음 플라스틱 봉지로 밀봉해 골판지 상자에 담아서 수송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이렇게 밀봉하면 봉지내부 산소의 양이 감소해 에틸렌의 발생이 차단되고, 따라서 바나나의 착색이 지연되어 상당기간 녹색으로 유지된다. 바나나를 공기 중에 두면 일주일 만에 노랗게 익으므로 장거리 수송을 할 수 없다. 이 상태에서 바나나는 약 10일간 배를 타고 우리나라 항구에 도착하면 검역 및 통관절차를 거친다. 이어서 바나나는 저장고에서 에틸렌으로 훈증하게 된다. 후숙실 내부로 에틸렌 가스를 공급하여 차압팬을 약 2-3일 가동한다. 이 때 바나나를 담은 플라스틱 필름에 환기구를 내고, 이를 통해 에틸렌이 들어가면 바나나는 노랗게 착색준비가 된다. 박스채로 소비지 마트로 운송돼 매장 내에서 진열되면서 플라스틱 봉지를 벗기면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면서 비로소 바나나 송이 전체가 노란색으로 균일하게 착색이 시작된다. 소비지 매장에서 녹색 바나나를 만나기란 흔치 않은 일이다. 이와 같이 청과물은 품목의 특성에 따라 수확후에도 에틸렌을 이용해 착색을 증진시키거나, 플라스틱 필름으로 포장해 신선도를 유지하거나 왁스 코팅으로 부패를 억제하는 품질관리 기술이 적용돼 장거리 수송이나 장기 저장이 가능하게 한다.

수입 과일은 에틸렌 처리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제주산 감귤은 그러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해 국산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여야 할 시점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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