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0kg에 육박하는 황소가 육중한 몸을 마치 춤을 추듯 부드럽게 흔들며 상대방을 노려보고, 머리를 땅에 쳐박고, 뒷다리로 흙을 휘집으면 50m 지름의 원형링 밖에 있는 관중들은 숨을 죽인다. 이미 이전부터 내려왔던 정읍 전통의 소싸움이 정식명칭으로 5회에 접어들었으니 익숙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와" 하는 환호성과 함께 몸을 움츠렸던 소가 그 탄력을 이용해 상대 소의 머리를 들이받자 상대소도 경험이 많은 듯 받아치기에 들어간다. 정면에서 상대의 머리를 부딪치는 ‘머리치기’로 기습공격한 것에 이어 뿔을 걸어 누르거나 들어올리는 ‘뿔걸이’와 온 힘을 다해 밀어부치는 ‘밀치기’가 이어지고 본격적인 소싸움이 시작되었다.
밀고 밀리는 지구력의 싸움. 거친 숨으로 땅이 패이고 작은 움직임에도 흙이 튀는, 보기에는 움직이지 않지만 서로 격렬한 기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긴장감이 현장을 감싸면 관중들도 긴장감으로 이내 조용하다. 정중동(靜中動)이라는 표현이 이 순간 이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둘중 하나 힘이 부치거나 빈틈을 보이면 싸움은 결판이 난다.

싸움을 붙이는 조련사와 자신의 소에게 힘내라는 축주들, 그리고 구수한 해설로 관중들을 사로잡는 해설자마저도 이 순간에는 말을 삼간다. 모두가 두 마리 소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침을 삼킨다.
시??정해지지 않은 무한의 단판승부. 토해내는 숨소리, 꿈틀대는 근육의 움직임. 설명하기 힘든 정적속에서 피부로 전해져 오는 역동성. 바람처럼 지나가는 시간.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
농경문화가 시작된 이래 목동들이 심심풀이로 즐기다가 점차 마을사람들이 명예를 걸고 싸우는 부락단위 세 과시를 위한 시합으로 발전된 ‘소싸움’은 이와 같은 역동성과 주변을 둘러싼 장터로 인해 마을의 축제로 자리잡은 민속놀이이다.

소싸움에는 역동성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줄에 매여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긴장감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소, 입장하자마자 상대방의 소를 보고 냅다 꼬리를 감추며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소, 싸우라고 링에 집어 넣었더니 상대 소의 얼굴을 핥아주며 유혹하다가 쫓겨나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드는 소도 있다.
한판의 소싸움이 끝나면 막걸리를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서 다음 싸움을 기다리거나 그러한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순박함이 있고, 평소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즐기는 농촌의 정취는 우리내 농경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문화적 재산임에 틀림이 없다.

싸우기 싫다는 소를 억지로 끌어다가 상대 소와 얼굴을 맞대면서 관중들에게 핀잔을 듣는 축주나 오랜 시간 싸움시키기 위해 분위기를 잡다가 목이 쉬고 지치면서 몸놀림이 자꾸만 늦어져 야유를 받는 조련사들도 있다. 주인공인 소와 관중인 사람들이 닮은 꼴로 그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내려져 있는 것이 바로 ‘소싸움’이다.

권 민 kmin@af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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