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는 우리 농업의 전례 없는 위기를 몰고 올 것으로 예측된다. 양념채소, 과수, 축산은 물론이고 가공식품 또한 FTA 개방의 파고에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워낙 많은 부문의 농축산물에 큰 타격이 예상되면서 가공식품 부문은 사실상 방치돼 온 상황이다.

눈 여겨 봐야 할 문제는 가공의 ‘범위’이다. 흔히 가공식품이라면 과자, 라면, 유제품 등을 떠올리기 십상이고 이에 따라 중국과의 FTA는 한국 가공식품 소비시장의 ‘확장’ 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한국의 프리미엄 가공식품을 개발, 중국의 젊은층 또는 중산층을 공략하자는 청사진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 가공 정도에 따라 가공식품 부문에도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스낵류나 유제품 등의 식품은 시장개방을 발판삼아 중국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지만 세척, 절단 등 최소한의 가공만 이뤄진 식품 개방의 피해는 고스란히 원물 생산자에게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원물에 가까운 신선편이농산물도 ‘타격’ 예상

우리나라와 중국은 농산물 재배면적, 생산량 등에서 월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고추, 마늘, 양파 등의 양념채소 재배면적은 우리나라 재배면적의 10배에 달하고 그곳에서 나는 생산량 역시 전 세계 생산량을 쥐락펴락 할 만 한 물량을 자랑한다. 가격 경쟁력에서도 한국산 농산물을 월등히 앞서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농업인들은 양념채소, 과수 등 막대한 타격이 예상되는 품목을 초민감 품목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원물만 초민감 품목으로 지정할 시, 단순 세척·절단 등 가공을 가한 중국산 농산물의 반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중국은 양념채소 가공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내 빈번한 식품 안전사고 발생 이후,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신선편이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실제 한국으로 반입되는 양념채소류의 61%가 1차 가공 이후 반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원물의 관세율이 각 농산물 부류에 따라 135~400%로 높게 책정된 반면 다진 양념이나 냉동·가공해서 들어오는 농산물은 관세율이 20%까지 낮기 때문이다.

최지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중국과의 FTA 영향이나 피해 정도가 원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하고 “빻은 마늘, 다진 양념, 세척·절단 농산물 등 최소한의 가공 과정만을 거친 신선편이농산물 등은 가공식품으로 분류돼 관세가 철폐 될 경우 막대한 양이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다.

원물만 초민감 품목으로 지정 해봤자 ‘도루묵’이란 설명이다.

최 부원장은 “고추만 해도 원물을 제외하고 절임고추, 냉동고추 등 10개가 넘는 가공형태의 품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모두 초민감 품목으로 묶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원물에서 빠져나온 가공형태의 농산물 반입 피해는 결국 원물 생산자인 농업인들에게 고스란히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 농업-식품·외식 상생 위한 대책 마련 필요

중국과의 FTA로 관세가 철폐되거나 낮아질 시에는 식품가공·외식업체의 중국산 원료 의존도를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가공형태로 반입되는 중국산 농산물은 각 가정에서의 소비보다는 원산지 규명 부문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식품가공·외식업체에서 사용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산 원료 사용 시 안정적인 원료 조달이 가능할 뿐 아니라 값싸게 대량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세척, 절단, 냉동 등 단순 가공형태의 신선편이농산물 대부분은 단체 급식 등의 외식업체나 식품 가공업체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산 농산물 원료를 고집했던 식품가공·외식업체들도 개방화에 따른 관세 철폐 시 중국산 원료 사용으로 돌아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에 따라 중국과의 무역자유화로 농업과 식품·외식 기업 간 ‘상생협력’이 딜레마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중국과의 FTA가 한국 식품 시장의 기회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농업의 기회라고 볼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농업계 한 전문가는 “치킨·맥주가 중국에서 열풍이 불었고 스낵류, 바나나우유 등의 가공식품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반대로 농업과 연계가 높다고 할 수 있는 토마토 소스류, 과일농축액 등은 유럽, 일본 등의 식품에 밀려 경쟁력이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농업과 식품·외식기업 간 연계를 강화해 동반성장이 강조되고 있지만 개방화에 따른 피해는 농업이 지고 값싼 원료 조달, 수출 시장 확대 등의 혜택은 식품·외식기업들에게 가고 있는 형국이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의 FTA는 신선농산물에 가까운 가공품이 싸게 들어올 수 있어 신선편이농산물 시장에도 타격을 줄 것이 명백하다”며 “이에 대한 분석이 체계적으로 돼야 함은 물론 식품·외식기업이 국산 원료를 사용 할 시 이에 따른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거나 김치, 쌀, 배추 등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원산지 표기를 확대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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