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개선·방역’ 근본대책 시급

최근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발생과 관련해 지역별, 가금 축종별, 농가 규모별로 맞춤형 추가 방역 조치가 취해지고 24시간 내 살처분·매몰 등이 이뤄지면서 발생이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설 연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고병원성 AI 사태가 더 이상 확산 내지는 장기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보다 철저한 차단방역과 소독 등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해마다 반복되는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시설 개선, 방역 등과 관련한 제도적인 측면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고 이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상>GPC 설치 & SOP 명확화
<중>소독제 & 백신
<하>계열업체 살처분·매몰 비용 분담 & 휴업보상제

# H5N6형 발생, 살처분 보상금액만 2300억원 넘을 듯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에 발생한 H5N6형 고병원성 AI는 정맥내 병원성지수를 의미하는 ‘IVPI 3.0’으로 24시간 내 전수 폐사에 이르는 ‘최고치의 고병원성’을 가졌다. 실제로 육용오리 폐사가 35.7%에다 산란계 100% 폐사, 종오리 산란율 저하는 100%에 달한다.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듯 발생이 급속하게 늘면서 지난해 12월 31일 10개 시·도 37개 시·군 611개 농가 2883만마리가 살처분·매몰된 데 이어 지난 5일 기준으로 산란계 2262만마리(사육대비 32.4%), 오리 241만마리(27.5%) 등 살처분·매몰 마릿수가 3065만마리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살처분 보상금은 지난달 22일 기준 1022억원(국비 841, 지방비 210)에서 29일 1690억원(국비 1352, 지방비 338)에 이어 지난 3일 2304억원(국비 1843, 지방비 461)으로 추정됐다.

이는 2014~2015년 H5N8형 고병원성 AI 발생 당시 농가당 살처분 보상금 소요액 평균 약 3억3000만원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농가당 평균 약 3억7000만원에 달하며 아직 진행 중인 이번 고병원성 AI 사태를 감안할 때 살처분 보상금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입식이 제한되는 살처분 농가에 전국 농가 평균 가계비(월 257만원)의 3~6개월분을 지원(국비 70%, 지방비 30%)하는 생계안정자금을 비롯해 이동제한에 따른 출하지연 등으로 발생하는 농가의 손실을 지원(국비 70%, 지방비 30%)하는 소득안정자금(국비 70%, 지방비 30%)과 가축입식자금, 지자체 방역비용 지원 등을 합치면 고병원성 AI 발생에 따른 피해와 손실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 질병 수평전파 막는 ‘GPC’ 구축돼야

이 같은 살처분 보상금 등을 포함해 직간접적인 피해를 고려하면 해마다 반복되는 고병원성 AI를 막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가축전염병 발생농가의 경우 사육환경 개선을 전제조건으로 입식을 허가하는 것은 물론 공장형 밀식사육환경을 개선하고 바이러스 저항력을 높여주는 사료첨가제의 개발·보급 등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고병원성 AI 사태가 산란계에서 집중된 것과 관련해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계란수집 차량이 산란계 농가에 직접 출입하는 등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돼 수평전파를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계란유통센터(Gathering Packing Center, GPC)’가 구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GPC가 설립되면 현재 계란 유통상인들의 차량이 농장을 직접 찾아가 계란을 수집하는 방식이 아닌 지역별 광역 CPC에서 계란을 일괄적으로 수매·유통해 AI 수평전파의 위험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GPC는 이미 일부 농가에서 운영에 들어갔지만 그동안 공급과잉이었던 계란을 반출하는데 급급한 농가들이 GPC를 거치지 않고 직접 유통상인에게 할인 유통하는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일부는 적자를 견디지 못해 문을 닫기도 했다.

이에 업계에선 방역과 계란유통 시스템 개선을 위해 정부 차원의 GPC 건립과 더불어 모든 농가에서 반출되는 계란이 각 지역별로 지정된 GPC로 수집될 수 있도록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만형 다한영농조합법인 조합장은 “광역 GPC가 건립될 경우 대규모 농가에선 GP용 운반차량을 지정·운영하고, 소규모 농가에선 GPC 자체 차량으로 운반해 계란 수집차량을 최소화한다면 차단방역 관리가 훨씬 수월해 질 것”이라며 “GPC가 건립되면 질병전파의 위험성 감소와 함께 농가와 유통상인간 할인거래·후정산 관행 등을 근절해 건전한 유통체계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광역 GPC는 계란을 수집·분류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통해 품질 균일화와 위생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다만 광역 GPC에 농가별 계란반출 차량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만큼 차단방역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 SOP 개정도 필요해

해마다 고병원성 AI를 겪으면서 이미 수차례 SOP(긴급행동지침)가 개정됐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생한 H5N6형이 기존 발생한 H5N1형, H5N8형 AI 바이러스와 달리 확산속도와 전염성이 강해 이에 맞는 위기경보 단계의 단축이 필요했다고 보고 현행 ‘관심·주의·경계·심각’ 4단계인 SOP의 위기경보 체계를 2단계 혹은 1단계로 단축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도 위기단계 구분 없이 AI의 방역조치를 취하고 있고 확진판정 2시간 만에 총리가 직접 방역을 지시, 발 빠르게 국가재난을 선포하는 등 범정부적인 차원의 대책이 시행되고 있다.

특히 농가들의 철저한 차단방역을 위해 SOP가 보다 구체적인 소독제시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SOP의 차량별 AI 표준행동요령을 보면 소독과 건조 시간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농가들의 소독 및 건조시간이 제각각으로 이뤄지면서 소독 효과가 전혀 없거나 미미한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농훈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차량소독과정에서 소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반드시 이물질을 제거하고 소독한 후 건조를 제대로 충분히 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과정이 현장에서 잘 지켜질 수 있도록 SOP를 보다 구체화하고 명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양계협회 관계자도 “정부의 뒷북 대처로 이번 AI는 사상 최악으로 번졌지만 앞으로 선제적으로 이뤄지는 정부의 대처와 함께 농가에 효과가 입증된 소독제를 제시해주고, 단계별 소독방법을 구체화하는 등 SOP의 개정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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