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백과가 익고, 단풍이 알록달록 물드는 풍요로움의 상징과도 같았던 가을이지만 농심(農心)은 올해도 뒤숭숭하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논의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 우리 농업을 위협하는 통상이라는 과제가 목전에 자리하고 있으며 풍년임에도 가격이 폭락할까 하는 두려움에 농업인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며칠 전 전북 김제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업인과 통화를 했다. “올해도 풍년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농사가 안 돼도 걱정, 잘 돼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농사가 잘 되면 가격이 낮아질까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다행히 올해는 정부의 수매 확대와 이에 대한 발표가 평년보다 빨랐던 탓인지 민간 RPC(미곡종합처리장) 등에서 매입을 늘리고 있다고 한다. 대형유통업체 등에서 판매되는 소비자가격도 지난해 20kg 기준 3만~4만원선이던 것이 올해는 5만~6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아직 농업인들의 노고와 견주거나 안정적인 영농활동을 유지할만한 수준의 가격은 아니지만 가격이 반등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넘어야 할 큰 산이 남아있다. 소비자의 인식 문제다. 지난해 3만~4만원에 쌀을 구입했던 소비자들은 올해 쌀 가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가격이 더 오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포털사이트에서 쌀을 구입하기 위해 검색을 하다보면 햅쌀이 아닌 지난해 쌀을 찾는 소비자들이 종종 눈에 띈다. 하락세를 면한 쌀값에 대한 소비자들의 단편적인 반응 중 하나다.

소비자에게 ‘적정 가격’이나 ‘합리적 소비’란 좋은 물건을 보다 싼 가격, 나아가 최저 가격에 구입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경제논리대로라면 쌀값은 오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주권, 안전한 먹거리 등 식량문제는 국방문제에 버금가는 안보의 문제다. 소비자들에게 이에 대해 분명히 인식시키고, 농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농업인은 “치킨 한 마리, 피자 한판은 2만원씩 주고 사먹으면서 2~3달 먹을 쌀 10kg, 3만원이 비싸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며 “쌀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쌀은 주식이기에 그 ‘소중함을 더 잊고 지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따끔한 일침이다.

세상에 비싸고 좋은 것은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비싸면서도 안 좋은 것, 싸니까 안 좋은 것도 있다. 하지만 싸고 좋은 것은 없다. 제대로 가치에 대해 인정받지 못하고, 제값을 받지 못하면서 무언가를 만들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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