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 전원위원회가 지난 11월 27일 청탁금지법에서 허용하는 선물상한액을 농축수산품의 경우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기 위한 개정안을 부결시킨 것은 농민의 절박함을 외면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농민들은 지난해 9월 28일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설, 추석 등 두 차례의 명절대목을 지내면서 전례없는 불황을 겪었다. 설, 추석 등 명절에 절반 이상의 과일이 유통됐으나 청탁금지법 이후 과일 유통량은 절반으로 주저앉았다. 한우, 굴비, 인삼 등 고가의 제품들은 아예 선물목록에서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투명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청탁금지법이 제정됐으나 특정 산업의 일방적 희생을 담보로 하는 불평등법이 아닐 수 없다.

무차별적인 수입농산물로 가뜩이나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이 국내법으로 또 한 번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2004년 칠레와의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시작으로 그동안 동시다발적으로 FTA가 체결돼 농산물 수입이 급증했고, 이에 따른 농가소득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1995년 이후 농산물 수입은 2.1배 증가했고, 대체재인 수산물 수입도 3.7배나 증가해 같은 기간 농업총소득은 무려 40%나 급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농민들은 수입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농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안전은 강화하고, 품질을 향상시켜 왔으며,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쏟아 왔다.

그런 농민들에게 이번에는 국내법으로 시련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지인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주고받던 농축수산물이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뇌물로 치부되면서 농산물 유통이 뚝 끊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농가소득도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 정부부처 장관까지 나서서 청탁금지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선 이유이다. 다가오는 설에는 농축수산인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청탁금지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권익위원회가 청탁금지법 개정안을 부결시킨 것은 농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처사로 밖에 볼 수 없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다시 한 번 농민들의 처한 현실을 직시해 주길 바란다. 청탁금지법상 선물상한액 상향 조정은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안전하고, 고품질의 농축산물을 제공하기 위한 농민들의 노력에 더 이상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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