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최기수 발행인] 

무엇을 심어야 수지가 맞을까? 농업인들의 고민 중 가장 큰 고민이다. ‘먹튀’들이 이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먹튀는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튀는 업자들이다.

 

1970년대 어릴 적 얘기다. 아홉 살 많은 누님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서무직 공무원으로 취직을 했다. 어느 날, 누님이 집으로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 사람은 아버지에게 뭔가를 진지하게 설명했다. 그 후 집 안에 꿩알 부화기 한 대가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님은 꿩알부화기 판매업자에게 걸려들었고,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를 짓는 아버지를 생각해 그 업자를 아버지에게 소개했었나 보다. 1970년대 꿩이 유망작목으로 홍보된 적이 있다. 유망작목이라던 꿩은 현재 충북 수안보온천 지역에서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다. 그 꿩알부화기는 꿩병아리를 한 마리도 부화시키지 못했다.
 

그 다음 해인가? 아버지가 뽕나무밭 일부에 컴프리를 심었다. “컴프리는 잎으로 차(茶)를 만들기 때문에 유망작목이라고 한다”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컴프리 잎은 담배 잎만큼이나 크다. 그 정도면 아마도 아버지가 심은 면적에서 나오는 컴프리 잎만으로도 국내 컴프리차(茶) 수요를 충족하고 남았을 거다. 하지만 컴프리는 한 번도 팔지 못했고, 어머니는 주기적으로 컴프리를 베어다가 쟁기질을 하는 암소에게 소꼴로 주었다.
 

그 당시는 토끼, 특히 털을 깎아 파는 앙골라토끼가 유망작목으로 홍보되기도 했다. 집안 당숙도 앙골라토끼 사육에 나섰는데, 털을 한 번도 팔지 못했다. 키우던 앙골라토끼는 결국 식용으로 처리된 걸로 기억된다.
 

1990년대 초 UR(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농업에 암울한 위기감이 급습했다. 이를 이용해 업자들이 설쳐댔다. 일종의 민물개라고 하는 뉴트리아가 유망작목으로 소개됐다. 식용 비둘기도 돈벌이 작목으로 홍보됐다. 업자들 농간에 사육농가는 빚만 졌다. 

유망작목이라면서 농업인을 울리는 업자들 농간은 계속됐다. 1990년대 중반 타조가 최고의 소득작목으로 홍보됐다. 타조는 환경에 잘 적응해 키우기가 쉽고, 달리기를 잘해 승마용 말을 대신할 수 있으며, 고기는 식용으로 소비되는데다, 털은 패션 소재 등으로 이용된다. 타조는 하나도 버릴 게 없는 고소득작목이라는 그럴듯한 설명이 이어졌다.

당시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상임위원회에서까지 타조를 축산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질의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타조도 초기 분양업자들만 잇속을 챙긴 후 알게 모르게 잊혀졌다. 당시 타조는 수 백 만 원에 분양됐다. 타조 알도 하나에 30만원에 팔린다고 홍보됐다.
 

유망작목이라는 홍보는 그 후에도 계속됐다. 요즘 몇 년 사이는 벨리 종류가 유망작목으로 많이 소개됐다. 초창기 진입한 농가는 소득을 올리기도 했지만 재배가 늘어나면서 벨리 값은 폭락했다. 유망작목이라고 심었다가 애물단지가 돼 그냥 방치되는 경우도 곳곳에서 목격된다.
 

1990년대 초 신문사 편집국 차원에서 유망작목을 찾는 기획시리즈를 준비한 적이 있다. 어떤 작목인가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수소문을 해 당시 유망작목이라고 평가를 받는 그 작목을 재배하는 농가와 취재약속을 위해 전화를 했더니 “오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망작목으로 소개되면 과잉이 돼 나도 죽고 모두 죽는다.”는 대답이 뒤따랐다.
 

그동안 외국에서 도입된 품종이 국내에 성공적으로 정착을 한 경우는 파프리카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비시장이 얇거나, 수요가 없는 유망작목은 있을 수 없다. 물론 가격경쟁력도 갖춰야 유망작목이 된다. 유망작목이라고 심었다가 빚만 지고, 종묘·종자 분양업자만 먹고 튀는 ‘먹튀’가 활개를 치는 사태는 이 정도에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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