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일 한국축산학회 회장(강원대 동물생명과학대학 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 

-축산의 위급한 상황 지속

-양적성공에서 질적 성장 해야 할 때

-산학관연 혼연일체, 꾸준한 투자와 인내 필요해
  

인간사를 물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물은 웅덩이를 가득 채운 뒤에야 흘러간다(盈科後進, 영과후진)고 한다.

흐르는 물은 결코 건너뛰는 법이 없어 차곡차곡 웅덩이를 채운 후 다음으로 흘러간다. 모든 일을 함에는 그 과정이 있어 차근차근 밟아야지 함부로 단계를 뛰어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처럼 빨리를 강조하는 세태에서는 결과를 빨리 도출하는 것만을 능사로 여기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시간을 들여 축적해 기본을 튼튼히 하는 영과후진의 진리가 새삼 강조되는 시대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의 고소득 국가 시대 살고 있다. 반세기만에 세계가 놀랄 정도의 눈부신 성장을 했다. 축산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농업총생산액 중 42%를 축산이 차지할 정도의 양적 성장으로 주력산업의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미허가축사, 가축분뇨처리, 악성질병, 동물복지, 축산물 안전성 등 질적 성장의 당면한 문제로 축산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이것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축산에 위급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서 ‘축적의 시간’에서는 어떤 특정한 형태의 기술 역량, 즉 개념설계의 역량이 부족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개념설계 역량은 그것이 갖는 독특한 특성인 시행착오를 꾸준히 축적해야만 얻어지는 것인데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축적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산업의 대부분은 선진국으로부터 아이디어나 완전한 결과물의 도입 및 안전한 비즈니스 등의 개념설계를 수입해 단기적이고 현상적인 원인분석, 대중적 처방으로 실수 없이 빠르게 효율적으로 실행하는 양적 성공을 이뤘다.

지금까지 축산업이 주로 규모의 경제와 속도전으로 양적 성장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축적이 없는 관행적 모습으로는 축산의 직면한 질적 성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여기에 지역 내에서 점점 깊어가는 타 산업분야와의 갈등이나 축산단체 간의 불협화음, 축산관련학회간의 유기적 협조체계 미흡은 축산의 당면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축산의 당면문제 해결에 필요한 각종 개념 설계역량 배양이나 축산을 바라보는 국민의 평가는 영과후진의 특성처럼 장기간 축적의 시간이 요구되므로 산·학·관·연이 혼연일체가 되어 차근차근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  
 

올해 한국축산학회는 창립이래 처음으로 6개의 축산관련학회와 연합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축산의 통섭(通涉), 상생의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그동안 미흡했던 축산관련학회간 협조체계를 보다 유기적으로 구축하는 자리였다. 특히 학회창립이래 처음으로 농림축산식품부장관께서 그 자리를 빛내줬으며 산·학·관·연 관계자가 함께 축산분야의 당면문제와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진지한 토론이 이뤄졌다.

무엇보다도 이번 연합학술대회는 학회가 중심이 돼 축산분야의 당면문제를 산·학·관·연이 함께 공유하는 출발점이라는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축산업의 질적 성장 동력은 웅덩이에 담아지는 다양하고 수많은 시행착오의 축적에서 얻어진다.

이를 계기로 축산관계자 모두는 타 산업에서 겪지 못한 정도의 시행착오를 축적하도록 꾸준히 투자하고 인내해 유용한 개념설계의 해법을 제시, 국민이 납득하는 질적 성장의 축산업을 만들어 내야한다. 축산이 당면한 질적 성장의 문제를 영과후진의 모습에서 보되 축적의 시간이 느리다거나 힘들거나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 보다 더 생산적으로 보이는 단기적 전략에 마음을 쉽게 빼앗기지 않도록 구성원 모두의 뚝심이 필요한 시기이다.

규모(scale)의 축산에서 세심함(detail)의 축산,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공감대형성 축산, 집단지성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축산, 그리고 대한민국 축산업의 가치와 지표에 걸 맞는 조직과 예산을 뒷받침하는 축산이 그것이다. 대한민국 축산업의 곳곳에 영과후진의 모습이 스며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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