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박유신 기자] 

지난 7월 2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WTO(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들의 지위 개혁을 압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사실상 거부에 대한 보복조치를 예고하며 결정토록 종용한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결정시한을 오는 23일까지로 정했다. 이 시점에 맞춰 USTR(미무역대표부)도 부당하게 개도국 지위를 누리는 국가명단을 통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이다.

 

이에 최근 우리 정부도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WTO 개도국 지위 포기여부를 안건으로 상정,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농업계의 불안감이 팽배해 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고, WTO 차기 무역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미리부터 포기할 경우 WTO 차기 농협협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특히 농업부문에 있어 개도국 지위 상실시 현재 선진국 의무의 3분의 2만을 이행하고 있는 농산물 관세의 대폭적인 감축이 불가피하며, 농업보조금의 근거가 되는 AMS(감축대상보조) 역시 현재 1조4900억원에서 8195억원으로 삭감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민감품목의 허용범위 축소나 특별긴급관세 축소 등 농업에 미치는 피해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에 대한 입장을 암묵적으로 결정한 듯해 우려스럽다. 지난 2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성윤모 장관은 개도국 지위 유지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정부의 입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현재의 지위와는 상관이 없고 향후 협상에 대한 것인 만큼 관계 부처간 영향을 분석·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물론 개도국 지위 문제가 WTO의 이슈지만 WTO 안에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회원국들의 이해가 얽혀있는 상황에서 다자간에 이뤄지는 WTO 무역협상이 쉽지 않을뿐더러 협상타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측의 요구대로 개도국 지위포기를 선언하더라도 WTO 협정상 지금까지 시행해온 관세감축이나 보조금 수준 등을 계속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미국의 요구에 의해 시작됐고, 우리의 결정에 따라 미국은 자국법에 따라 양자 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지난 한·미 FTA 협상에서도 보았듯이 미국은 여전히 한국에서 농업부문을 매력적인 협상용 카드로 이용할 공산이 크다. 여기에 앞으로 전개될 국제 무역협상에 있어 농업부문의 피해가 불보듯 명확하다. 또 다시 농업이 타 산업부문과 비교당하며 시장경제의 논리에 휘둘린채 그 명맥마저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동시다발적인 FTA(자유무역협정)로 위기에 몰린 한국 농업이 개도국 지위 상실이라는 높은 파고를 넘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대부분 아니 모든 이들이 고개를 저을 것이다. 이에 농업계는 물론 국회까지 ‘정부의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선언은 우리 농업에 대한 포기 선언’이라며 강하게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농업을 영위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250만여명의 농어업인들에게는 우리나라가 개도국이냐 선진국이냐는 중요치 않다. 적어도 농업부문에 있어선 선진국이 아니라 개도국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국의 통상압박에 굴복해 개도국 지위 여부를 성급히 판단하기보다는 차기 WTO 협상을 대비해 농업부문의 개도국 지위 유지의 근거와 논리를 개발하고 혹시 모를 개도국 지위 상실에 대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농업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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