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세계무역기구)개도국 지위 포기에 이어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까지 사실상 타결되면서 성난 농업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만여명의 농업인들은 지난 13일 여의도에서 ‘전국 농민 총궐기 대회’를 갖고 농업과 농업인을 또 다시 희생양으로 삼은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앞서 농업인의 날인 지난 11일 이 날을 기념하고 기뻐해야 할 전국 각지의 농업인들은 잔치를 벌이는 대신 머리끈을 동여 매고 시위 현장으로 나섰다. 농업인들은 각 지자체 별로 기자회견과 집회를 잇따라 열고 농기계 시위와 상복을 입고 상여에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일본·중국·호주·인도·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초대형 FTA이다. RCEP은 중국을 비롯 호주, 뉴질랜드 등 농업 강대국이 속해 있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포스트-FTA농업통상 현안 대응 방안’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RCEP회원국에 대한 농산물 수입 및 수출 규모는 각각 66억8000만 달러와 31억5000만 달러로 약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 또 2013~2015년 평균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대 RCEP회원국 수입액은 우리나라 전체 농산물 수입의 38.1%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그동안 아세안, 중국 등과 체결한 FTA는 비교적 낮은 수준이었으나 이번 RCEP협상에서 개방 수준이 높아지면 그 피해는 눈두덩이처럼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WTO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RCEP협상에서도 최대 이해당사자인 농업계와 제대로 된 협의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의 ‘농업 패싱’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농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해당 분야에 필요한 조치와 대책을 철저하게 강구해야할 것이다.
 

국내 농업에 영향이 발생하면 그 때서야 피해보전대책에 나설 게 아니라 사전 점검과 분석을 통해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고, 이를 위한 예산도 충분히 투입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국내 농축수산업은 안타깝지만 아직 개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처럼 제대로 된 대책없이 빗장을 순식간에 열어버리면 국내 농축산업의 연착륙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는 농업을 더 이상 희생양으로 삼지 말고 이해당사자인 농축산업계와 협의하고 사전 대책을 세울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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