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간편하고 저렴한 소형·경량 '벌통' 개발

[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도시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싫어 농촌으로 떠나왔다가 벌에 푹 빠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청년농업인이 있다. 바로 정주근 금벌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정 대표는 지난해 수분용 벌의 이동과 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소형화된 벌통을 개발하며 양봉업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세종시 전동면에서 ‘벌 박사’를 꿈꾸는 정 대표를 만났다.

▲ 정 대표가 개발한 소형화·경량화 벌통(위). 기존 벌통(아래)에 비해 크기가 2/3 수준이다.

운명같이 시작한 양봉업

하우스 농사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 바로 수분이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수분이 일어나야 한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붓 등을 이용해 수분을 도울 수 있지만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 주로 벌을 이용한다. 정 대표는 이렇게 수분 과정에 투입되는 벌들을 키워 판매하고 있다.

정 대표가 양봉을 시작하게 된 건 운명과도 같았다. 그는 도시에서 운수업에 몸담았지만 경쟁력 있고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농업으로 눈을 돌렸다. 낮에는 운수업을, 저녁엔 야간대학을 다니며 농업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이 CEO가 됐다고 가정하고 사업을 구상해 보라’는 수업 과제를 받고 당시 가용할 수 있던 초기자본 500만원을 토대로 실제 실현 가능한 일을 찾다 양봉업을 선택했다. 발표 준비를 위해 현직 양봉인들을 대상으로 취재하고 자료를 모으다보니 양봉업에 큰 관심이 생겼다.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친 날, 집에 돌아와 생활정보지를 들척이다 우연히 벌을 인수할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운명이란 생각이 들어 바로 투자금을 마련해 양봉업에 뛰어들었다. 초기자본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한 금액은 일을 배우며 차근차근 갚아나갔다. 그렇게 양봉업을 시작한 게 벌써 9년이 됐다. 

처음엔 꿀 판매에 관심을 가졌지만 단순한 꿀 판매 시장은 경쟁이 치열했다. 좀 더 경쟁력 있는 분야를 찾다가 벌 임대·판매업에 발을 담그게 됐다.  

 

부피·무게 확 줄인 ‘소형화·경량화 벌통’  

벌 임대·판매업은 참외, 수박, 딸기 등 여러 품목을 바꿔가며 1년 내내 할 수 있다. 하지만 정 대표는 10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딱 7개월간 딸기 하우스에만 벌을 공급한다. 그 외의 기간에는 직접 벌꿀을 따 판매해 수익을 얻는다. 

정 대표는 벌을 임대가 아닌 판매 형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어차피 임대를 한다고 해도 임대기간동안 벌은 대부분 죽기 때문에 4월 이후에 회수한다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을 판매한다고 해도 주기적으로 농가를 방문해 관리해 줘야 하는 것은 임대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한 달에 1~2회 정도 방문해 벌 먹이도 주고 질병 등으로 인해 폐사하지 않도록 개체 관리를 해 주는 일은 적잖이 품이 드는 일이었다.

정 대표는 벌을 판매한 이후 농가 관리에 들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다. 동시에 농가에서도 손쉽게 벌통을 나를 수 있도록 부피와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방법도 고민했다. 그런 고민과 연구 끝에 탄생한 것이 소형화·경량화된 벌통이었다. 

 

벌 판매 지역 확장 가능해져

그 즈음 정 대표는 시에서 추진하는 ‘선도적 농업리더 영농정착 지원사업(영리더 사업)’을 우연히 알게 됐다. 영리더 사업은 미래의 농업을 책임질 청년농업인들의 영농 정착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세종시에서 일정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 대표는 지난해 소형화·경량화 벌통에 대한 아이디어로 영리더 사업에 지원했고, 그 결과 평가와 심사 과정을 거쳐 지원 사업으로 선정됐다. 이를 통해 그는 시 보조금 2800만원, 자부담 1200만원을 포함 총 4000만원의 사업비를 확보, 머리로만 구상하던 아이디어를 실제 제작해볼 수 있었다.

정 대표는 “시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가된 소형화·경량화 벌통 1000개를 제작했다”며 “이번에 개발된 벌통은 기존의 벌통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보완했으며 벌 판매 사업의 확장 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가격도 저렴, 별도 관리도 필요 없어

정 대표가 개발한 벌통의 가장 큰 장점은 벌통의 부피와 무게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벌통에 비해 크기는 3분의2 정도로 줄이고 경량화 해 하우스 내 좁은 통로에서 불편 없이, 누구나 손쉽게 옮길 수 있도록 했다. 

판매가도 크게 줄였다. 개당 15만원이던 벌통 가격을 11만원까지 줄였다. 이는 벌통에 들어가는 벌의 양이 줄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만의 노하우를 적용한 덕에 벌들이 긴 시간 동안 생존하며 수분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벌의 생존에도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벌이 생존하려면 벌통 내부의 온도가 35도 정도로 유지돼야 하는데 기존의 벌통에서는 온도 유지를 위한 벌의 체력소모가 심해 쉽게 폐사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벌통은 크기가 작아 벌의 온도 유지가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정 대표는 “작은 벌통이 생소해 꺼리는 농업인도 있지만, 이미 많은 농가들이 새로운 벌통에 적응해 가고 있다”며 “농가는 가격이 저렴하고 이동이 편리해 좋고, 벌 판매자들은 중간에 따로 벌을 관리하러 다니지 않아도 돼 좋다”고 소형화·경량화 벌통의 장점을 강조했다.

 

[Interview] 정주근 금벌 대표
"표준 벌통 만들고 매뉴얼화 시킬 것"

 

“좀 더 많은 양봉농가에서 제가 개발한 벌통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정 대표는 앞으로 벌통을 널리 홍보해 전국의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벌통을 판매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는 세종시와 인근 도시에서만 판매하고 있지만 점점 판매지역을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양봉업자들이 소형화·경량화 벌통에 벌을 채워 딸기 하우스에 수월하게 판매할 수 있도록 표준 벌통을 만들고 매뉴얼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관련 연구도 진행해 벌통의 장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 대표는 “향후에는 농협에 벌통을 납품해 최대한 많은 농가가 제가 개발한 벌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정 대표는 현재 초·중·고교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종종 양봉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양봉 관련 학과의 석·박사에 도전하고 관련한 지식을 쌓아 국내 최고의 ‘벌 박사’가 되는 게 꿈이다.  

 

※금벌은.
정주근 씨의 양봉농장 금벌은 세종시 전동면에 위치해 있다. 봄에 벌 200군으로 시작해 가을에는 600군까지 그 수를 늘리는데, 이 중 400여군은 딸기 하우스에 판매하고 나머지 200군은 다시 종봉으로 남겨두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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