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림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가축개량평가과 농업연구관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천안시 서북구에 위치한 성환역에서 택시를 타고 국립축산과학원 가주세요라고 하면 종축장요?”하고 되물어 온다.

50여 년의 세월 동안 수차례 이름이 바뀌었지만 한결같이 종축장이다. 짧은 순간 바로잡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하고 대답하고 만다. 이러한 교정 시도가 효과가 없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공유했던 경험과는 쉽게 이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성환 주민들과 종축장은 어떤 경험을 공유하고 있을까.

국립종축장은 1948815일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194916일 농업기술원 축산지원으로부터 출발한다. 축산지원이 성환에 설치된 것은 해방 전 일본인이 만든 목장부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 1952510일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된 축산연구기관인 중앙축산기술원이 성환에 설치됐다. 이후 1962년 농촌진흥청 축산시험장으로 개편됐다가 1960년대 말부터 축산물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자 종축개량과 보급의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 1969년 성환에 있던 축산시험장 본장을 국립종축장으로 개편했다가 1994년 축산시험장과 통합한 후 몇 차례의 명칭 변경을 거쳐 현재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에 이르고 있다.

성환 종축장은 한우, 젖소 등 우량종축의 생산보급을 주요 임무로 했는데 특히 일반 농민들에게 우량 젖소를 보급해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낙농업이 급격히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천안시에서 운영하는 누리집의 마을이야기 성환편을 보면 성환은 낙농업이 크게 발달했는데 이는 종축장의 기술지도 영향이 크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환이 고향인 50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님 세대에는 많은 분들이 종축장에 근무하면서 생활을 영위했었고, 인근 지역에서는 종축장에서 생산한 우량 젖소를 분양받아 키워 소득을 늘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본인들도 학교 소풍 때면 종축장 내 취원각에서 뛰놀았던 기억이 많다고 한다. 이와 같이 성환과 종축장이 경제와 문화를 같이 공유했던 경험 때문에 성환 주민들은 늘 종축장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1990년대 수입개방에 대응하기 위해 종축장의 명칭과 기능이 바뀌고, 2000년대 들어 각종 가축 전염병이 확산됨으로써 성환과 종축장은 서로 교류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는 예전 우량 가축 보급이 주 임무였던 종축원에서 우리나라 가축개량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변신해 우리나라 젖소의 생산량을 세계 3~4위 수준으로 이끌고, 수입개방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수입 소고기와 당당하게 경쟁하는 한우를 육성하는 등 좀 더 큰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음을 위안으로 삼는다.

성환의 지역개발 필요성 때문에 축산자원개발부의 이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성환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더라도 성환에 위치했던 종축장에서 우리나라 축산연구가 처음으로 시작됐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이전지에서도 성환과 종축장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가 정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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