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안양대 교수/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
정가·수의매매 확대 위해 지나친 목표 위주 정책 추진 지양
현실 여건 고려한 가이드라인 제시를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정부는 농산물 도매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가·수의매매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상 경매·입찰과 동등한 거래방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가·수의매매는 정가매매와 수의매매로 구성돼 있다. 정가매매는 출하자가 미리 판매예정가격을 정한 상장 물품에 대해 도매시장 법인이 구매자(중도매인, 매매참가인)에게 해당 가격과 판매 물량을 제시해 거래가 성립되는 매매방법이다. 수의매매는 도매시장법인(경매사)이 대상물품의 판매가격을 미리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구매자(중도매인, 매매참가인)와 1대1로 협의해 가격과 물량 등 거래 조건을 정하는 매매방법(예약수의매매 포함)이다.

정가·수의매매는 경매·입찰제도의 가격 급등락 문제를 해결하고 산지와 소비지 간의 안정적인 거래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며 불필요한 시·공간적 제약에 따른 유통 비효율 문제를 개선하고자 도입됐다. 정가·수의매매는 농수산물의 거래방법을 다양화해 유통효율성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 특히 전자거래로 진행할 경우 현물이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유통단계의 축소와 함께 상품의 신선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부에서는 정가·수의매매를 확대하기 위해 자금 지원 등 여러 가지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으나 2018년 공영도매시장에서의 정가수의매매 비율은 16.4%에 그쳤다. 더욱이 정가수의·매매가 수입농산물 위주로 확대되는 추세다.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경우 국산농산물의 정가·수의매매 비중은 11.9%에 불과했으나 수입농산물은 70.6%로 높았다. 물량 기준으로 정가·수의매매 상위 5대 품목은 양파, 무, 배추, 사과, 파였다.

다양한 정책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정가·수의매매가 대폭 확대되지 않은 이유는 도매시장법인들이 막대한 당기 순이익을 실현함에도 불구하고 경매사 수 확충 등의 투자를 하지 않고 있으며 정가·수의매매 시 가격 결정을 경매가격에 연동해 결정하거나 중도매인이 출하자로부터 직접 수집한 물량을 기록 상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오타시장 도매법인인 동경청과는 품목별 전담 경매사를 약 180명 배치해 정가·수의매매를 활성화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15년 기준 상대매매(수의매매) 비중은 89.5%에 달한다. 반면 가락시장의 5개 청과부류 도매법인은 2019년 기준 도매시장 법인 당 평균 36명의 경매사를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가락시장 가격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정가·수의매매는 가격 안정화 효과가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가·수의매매는 특·상품 위주로 거래돼 가격 수준은 높으나 경매가격을 참조해 가격이 결정되므로 가격안정성이 높다고 할 수 없다. 또한 가격결정의 인과관계에서도 대체로 경매가격이 정가·수의매매 가격을 선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가·수의매매는 도매시장 거래가격을 안정화시키고 중도매인의 영업력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화됐으나 실제 예약형 정가·수의매매의 비중이 크지 않고 물량 반입 당일에 이뤄지는 선취형 거래 형태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정가·수의매매는 출하자보다 중도매인이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주로 대규모 중도매인에 의해 주도돼 정가·수의매매에 참여하지 않은 영세 중도매인의 불만이 큰 편이다. 경매사를 거치지 않고 중도매인에 의해 직접 조달되기도 한다.

정가·수의매매제도의 거래 절차 투명성에 대해서 도매법인은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운영한다고 응답했으나 중도매인은 투명하지 않다고 응답하는 등 주체 간에 평가가 엇갈린다. 도매법인은 여건이 미비된 상태에서 정부의 지도와 권유에 의해 정가·수의매매를 마지못해 추진하고 있으며 앞으로 정가·수의매매를 확대할 계획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매인은 물량확보, 가격안정성 측면에서 정가·수의매매를 확대할 계획이나 투명성 부족, 도매법인의 투자 부족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출하자들은 정가·수의매매가 가격안정성 측면 등에서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나 정가·수의매매 확대를 위해서는 중도매인의 영업능력 향상과 규모화, 거래의 투명성 강화, 도매시장법인의 경매사 수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결국 도매시장 유통개선을 위해 정가·수의매매 확대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 요건이 있어 실제 거래 실태를 반영한 정책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 먼저 정가·수의매매 명칭이 가격안정화 효과 등을 과다하게 내포하고 있어 오해의 소지가 크기 때문에 현실적인 거래 방식인 ‘수의매매’ 또는 ‘상대매매’로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도매법인 경매사가 정가수의매매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명칭이 경매사인 관계로 산지관리·거래처 개발, 산지와 중도매인 간 이해관계 조정 등 정가·수의매매 관련 업무가 미흡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매사의 명칭을 그 기능에 적합하게 ‘농산물 판매관리사’ 등으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정부도 지나친 목표 위주의 정책 추진을 지양해야 한다. 정부의 지나친 관여는 파행적이고 외형적인 정가·수의매매를 양산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정가·수의매매가 시장의 요구에 의해 자연적으로 정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정가·수의매매 거래 비중 목표치와 같은 획일적 정책 목표 설정을 지양하고 현실 여건을 고려한 가이드라인 정도를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현재 정가·수의매매는 가격협상과정 등 각종 기록을 보관하도록 하고 있으나 너무 엄격한 업무 규정이 오히려 정가·수의매매 확대를 저해할 수 있으므로 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현실에 부합하도록 제반 규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정가수의매매가 경매제 일변도의 도매시장에서 거래 제도의 하나로 자리 잡아 가격안정화와 거래효율성 제고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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