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용 대아청과(주) 상무이사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경매 진행 방법 개선 조치명령’, 일명 응찰자 숨기기와 관련한 논란이 뜨겁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거래과정의 공정성ㆍ투명성 강화를 위해 경매 중에 응찰 중도매인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일선 경매사들과 도매시장 법인들은 “상세한 경매과정에 대한 이해 부족과 출하자 피해를 고려하지 못한 일방적 처사”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강행과 반발이 부딪쳐 자칫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까 우려되는 국면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양쪽모두 지향하는 명분이 출하자 보호에 있다는 것이다. 충돌 원인이 행정과 현장의 인식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서울시공사의 몇 가지 주장들은 사실 관계를 넘어 호도되고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공사가 논거로 들고 있는 ‘3초 이내 경락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3초 이내 경락되는 경매건수가 33%에 달하므로 정상적인 경매로 보기 어렵다는 단정이다. 일견 그렇게 순식간에 끝나는 경매가 과연 공정할 수 있겠냐는 의문도 들 수는 있겠다.

하지만 총 거래량의 3분의 1이 중도매인과 담합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행정의 잣대로 삼기에는 더욱 무리하게 보인다. 개연성과 여지만으로 사실 관계를 따질게 아니라면 말이다.

경매사는 출근해서 경매 전까지 출하품을 일일이 감정하고 내정가를 사전에 판단한다. 물론 시장전체와 경쟁사들의 반입 상황도 체크하고 전일 재고량과 소비동향까지 고려한 다음 경매대에 올라선다. 중도매인들도 반입물량과 상품성을 꼼꼼히 체크해서 응찰물량을 미리 선택하고 제시가를 가늠한 후 응찰에 임하게 된다. 이런 경우라면 2~3초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에겐 3초가 그냥 3초가 아니라 몇 시간 동안의 사전검증과 판단의 단계를 거친 농축된 순간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응찰자를 가리게 되면 깜깜이 경매가 되고 죽은 경매가 된다. 경매는 생기를 잃고 그야말로 구매자 일방의 단순 입찰행위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응찰과 낙찰은 무언의 소통과 감지수단이기도 하며 견제와 판단의 생생한 과정이다. 때문에 응찰자 숨기기는 곧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함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양방향 소통의 단절로 출하자를 대신하는 경매사의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출하자를 향하게 될 것이다.

적정선까지 비싸게 팔려는 경매사와 싸게 사려는 중도매인의 기싸움은 거래구조의 본질이고 현재 진행형이다. 1998년부터 거래투명성 제고를 위해 동원된 응찰기와 노트북은 수지식 보다 시간을 더 단축시켜왔다. 때문에 지금 와서 새삼 짧은 경매 시간을 탓하는 것은 어쩌면 모순적이기도 하다. 경매시간은 길든 짧든 적정가를 발견하는데 의미가 있고 그것이 곧 경매사와 중도매인의 전문성이자 스킬인 것이다. 남들이 볼 땐 알아들을 수 없는 뭔가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인정하고 신뢰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공정ㆍ투명성은 경매방식의 오래된 장점이다. 거래 제도를 비교할 때 대금정산의 안정성과 더불어 손꼽히는 자랑거리였다. 경매 단점을 얘기하는 사람들 중에는 거래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점을 지적하곤 한다. 이제는 너무 빠르다고 그래서 도저히 못 믿겠다고 문제시 한다면 헷갈릴 수밖에 없다. 내정가와 중도매인 제시가를 바탕으로 일단 품위별 최초 기준가가 형성 되고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는 게 경매다. 가락시장이 하루에 약 3만~4만건에 이르는 농산물을 무리 없이 판매해 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하나 행정기관의 공매(경매)와 신선농산물 경매를 비교하는 건 온당치 않아 보인다. 행정경매는 사전에 감정평가액이 제시되고 입찰보증금이 걸리고, 잔금지급 이후에야 소유권이 넘어가며 전국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참여가 가능하다. 각각의 성질, 목적, 시ㆍ공간적 상황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건당 몇 억 원이 오갈 수 있는 골동품 경매와 같이 오프라인 위주의 현물경매의 경우 응찰자가 오픈되는 건 기본이다.

지난 20년간 공사와 법인들은 수지식 경매를 전자식으로 바꿨고 실시간으로 경매정보도 제공해왔다. 이후 경매녹화 시스템 도입에 이르기까지 투명성ㆍ공정성 제고에 함께 노력해왔고 모범적으로 운영했음이 분명하다. 반면 이웃 일본은 접근방법이 조금 달랐다. 청과경매를 아직도 수지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도매인의 얼굴을 가리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경매 과정은 오히려 고유의 전통과 전문성으로 존중받는 느낌이 크다. 최소한 의혹의 대상은 아닌 듯 싶다.

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조금은 과하다 싶은 우리나라 경매시스템을 바라보는 근저에는 불신과 이해부족이라는 부정적 정서가 깔려있다. 결국 신뢰의 문제라는 얘기다. 하지만 경매도 결국 사람이 주체고 모든 시스템이 완벽할 수 없다면 빈틈 곳곳에 전문가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배이게 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관리주체의 선량한 관심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일부 가능성과 의혹만으로 경매의 근간을 훼손한다면 득보다 실이 너무 클 것 같다는 생각이다. 또 소수 민원을 이유로 삼는다면 200여 명 경매사들의 탄원 또한 당연히 귀 기울일 일이다. 행정권을 통한 강행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고 경매사 공영제까지 들먹이며 몰아붙일 일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오해는 디테일에서 시작되지만 진실 또한 디테일에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의 평행선 논리가 아니라 서로 제대로 경청하고 머리를 맞대는 진정성 있는 해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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