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 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우유는 단백질, 유당, 칼슘, , 비타민 AD 등 무려 100여 종이 넘는 영양소들을 골고루 함유하고 있어 영양소 밀도(nutrient density)가 매우 높아 미생물에 의한 오염이 잘 일어나기 때문에 착유 후 즉시 냉각해야 하고, 살균을 거쳐 안전한 식품으로 가공된 후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시유 처리 과정에서 살균 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미생물학적으로는 안전할지 모르나 우유의 기호성이 떨어지고 열에 약한 영양소들의 파괴가 수반돼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유의 가열은 저온장시간살균(LTLT), 고온단시간살균(HTST), 초고온살균법(UHT) 등의 상업적 공정으로 처리된다.

국산 원유는 대략 연간 총 205만 톤 정도 생산되고 그중에 시유로 팔리는 것은 약 160~170만 톤이나 되니 국내산 원유는 대부분 백색시유와 같은 음용류의 형태로 가공, 소비된다.

따라서 국가 간 치열한 유제품 시장에서 시유시장은 국내 낙농업이 지켜야 할 최후의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의 시유 정책이 사려 깊지 못하면 국내 낙농업은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 자료를 보니 200969.5%에 달했던 원유 자급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급기야 지난해에는 48.5%로 추락했다.

식품산업에서 통상적으로 가공식품의 보존 기간을 나타내는 용어로는 유통기한, 상미기간, 소비기한 등이 있고 식품의 품질 수명이나 품질유지 가능 시간을 의미한다. 요즘처럼 식품교역이 빈번해진 국제화 시대에서 대게 식품수출국과 영토가 큰 국가들은 식품 유통기간을 길게 설정하는 반면 식품 수입국들은 자국의 농업 기반을 지키는 수단으로 유통기간을 짧게 잡는 전략을 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유럽연합(EU), 미국, 호주, 일본 등은 국제적 추세인 소비기한을 표시하되 제조일자는 표시하지 않고 있다. 우리보다 낙농 여건이 더 유리한 이웃 일본도 시유에 대해 상미기간을 채택하고 있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우유의 경우 원유 중 체세포수나 세균수에 따른 위생등급, 살균이나 포장방법, 유통 조건 등 다양한 인자들이 유통기한에 영향을 미친다. 냉장 유통을 잘 지킨다면 미개봉 시유는 현행 10일 정도의 유통기간이 지나도 10일 정도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현재 국내에는 약 6200여 농가에서 하루 6000톤 정도의 원유를 착유한다. 젖소는 생리적으로 10개월 동안 매일 30Kg이나 되는 우유를 생산하므로 농가에서 착유한 원유를 지체 없이 가공 처리해 시유로 제품화하지 못한다면 시유 산업이 이끄는 국내 낙농업은 붕괴될 수 있다. 비록 유통기한이 길지 않지만 신선함이 월등한 국산 우유제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값싼 수입 우유로부터 국산 우유·시장을 보호하는 방파제와 같다. 식품 폐기비용의 절감, 소비자와 산업체의 편익 증가, 국제적 조화로 국내산 수출식품의 신뢰도 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주장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원유생산비용이 낙농선진국보다 2~3배 비싼 국산 시유제품에 소비기한을 적용하는 문제는 현실 여건을 고려해 결정해야 마땅하다.

만일 소비기한 도입으로 국산 우유의 변질사고가 발생해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수입 유제품에 의존하는 일이 생기지 말라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소비자연맹의 조사자료(2020)를 보니 국내 유통매장의 법적 냉장온도(0~10) 준수율은 70~80%에 불과했다. 우유의 냉장유통이 불완전하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완전하지 않은 냉장유통 상황 하에서 시유에 소비기한을 설정할 경우 우유 변질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날 개연성이 너무 크다. 우유는 빵, 생면, 통조림 등과는 특성이 너무 다른 식품이므로 소비기한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건 곤란하다. 식약처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시유제품의 소비기한 설정이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국내 낙농업이 무너진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이란 말인가.

요컨대 우유는 신선함이 생명이다. 따라서 국내산 시유에 대해 현행 유통기간보다 늘어난 소비기한을 적용한다면 국제 경쟁력이 취약한 국내 낙농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잃고 좌초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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