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유통본부장 김원필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1985년까지 우리나라 농산물 도매유통은 용산 등 유사도매시장이 중심을 이뤘으며 위탁도매상들의 불투명한 거래가 만연했다. 이에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을 근거로 1985년 6월 국내 최초로 공영도매시장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이 개장됐고 2004년 강서농산물도매시장 개설까지 전국에 32개의 도매시장이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공영도매시장 설립을 계기로 중도매인의 위탁거래를 전면 금지했으며 1991년부터 도매법인의 수탁판매를 강제하는 상장경매제도를 본격 추진했다. 상장경매제도는 시행 초기 위탁상의 전횡으로부터 농가를 보호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중간 유통비용 과다 발생, 가격 급등락 등의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경매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경쟁 촉진을 위해 정가·수의매매(이하 수의매매)의 일종인 상장예외품목을 1994년 지정했으며 2000년 시장도매인 제도를 법제화했다. 2012년에는 경매 또는 입찰의 예외조항으로 있던 도매법인의 수의매매를 경매와 동등한 거래방법으로 정했다. 
 

그러나 도매법인의 수의매매가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가격변동성 완화 효과가 거의 없고 기록상장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도매법인의 수의매매는 장려하지만 같은 수의매매인 상장예외품목의 확대와 가락시장 시장도매인제 도입은 막고 있다. 또한 농안법상 중도매인이 생산자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상장예외품목 지정사유를 매우 협소하게 규정해 경매제와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차단했다. 
 

도매시장 거래제도간 경쟁이 미약하고 도매법인의 수탁독점권이 보장된 상황에서 생산자가 도매시장에 농산물을 출하하려면 대부분의 품목은 경매를 거쳐야 한다. 도매법인은 수탁독점권을 기반으로 지난해 1697억 원의 수수료를 징수했다. 가락시장 도매법인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4.7%로 동일업종의 5.3배, 당기순이익은 12.1%로 동일업종의 5.5배에 달한다.    당기순이익 대비 배당성향은 무려 81%로 순이익의 대부분이 비농업 분야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이렇게 안정된 수익구조와 배당으로 지난해 동화청과는 771억 원, 대아청과는 564억 원에 농산물 유통과는 무관한 대기업에 인수됐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경매방식보다는 경제성·효율성을 중시하는 수의매매로 패러다임이 바뀐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설자·서울시의회·전국시도지사협의회 등에서 유통주체의 경쟁관계를 강화하고 불합리한 규제 개선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부는 현 제도의 개혁에 여전히 미온적이다.
 

도매시장 내 유통주체간 경쟁이 없으면 모두 도태될 것이므로 가락시장의 시장도매인제 도입, 상장예외품목 요건 확대, 중앙도매시장의 업무규정 변경 시 장관 승인 범위 조정 등 생산자·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농산물 유통 효율화를 위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사회적 가치 구현은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것이며, 도매시장에서의 사회적 가치 구현은 공정하고 활발한 경쟁을 통해서 생산자는 제값으로 팔고 소비자는 더 싸게 사는 유통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스스로 정한 핵심 가치와 다르게 가고 있는 정부, 특히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농안법. 이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품으로 돌려줘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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